베트남 대표국수 '포', 퓨전 요리란 걸 아시나요?

조선일보
  • 박돈규 기자
    입력 2008.01.04 22:27

    누들
    크리스토프 나이트하르트 지음|박계수 옮김|시공사|332쪽|1만4000원

    처음부터 끝까지 국수 얘기다. 스위스 한 시사주간지의 도쿄 특파원이었던 저자는 자칭 '국수 마니아'다. 수천 년에 걸쳐 국수가 어떻게 생겨나 어디로 전파되고 어떤 계층이 즐겨먹었는지 일화를 곁들여 소개한다. 이름 붙이자면 '국수의 문화사'다.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西安)은 실크로드의 한쪽 끝이기도 했다. 사람도 음식도 여기서 만나고 섞였다. 오늘날 이 도시의 국수집에 가면 면발이 가늘어질 때까지 밀가루 반죽을 공중에서 꼬고 늘이고 접고 다시 늘이는 종업원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는 "간쑤성의 국수는 실크로드 국수이고 위구르적이고 카자흐스탄적이며 몽골적인 반면 우리 산시(陝西)성 국수는 순수한 한(漢)나라 국수"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이탈리아인들은 상당수가 점심식사 때 모여 파스타를 먹는다. 이 나라에서 파스타는 애국의 상징 혹은 종교에 가깝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이 스파게티를 먹은 역사는 짧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마카로니를 기름진 닭 국물에 삶았다. 국수는 상류층의 음식이었다. 파스타는 20세기 들어서야 이탈리아인들의 프리모(첫번째 코스)가 됐다. 토마토를 얹기 시작한 것도 19세기의 일이었다.

    오늘날 국수의 대부분은 밀로 만든다. 특히 유럽 사람들에게 밀은 가장 중요한 주식이다. 밀은 중동에서 터키, 이집트, 지중해, 알프스로 퍼져 나갔고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건너갔다. 어쩌면 세계화의 원시적 예로 인용될 만하다.
    밀은 문명의 싹이었다. 신석기시대 야생풀에서 곡물경제로의 발전은 채집에서 경작으로의 변화와 함께 시작된다. 그 변화 덕에 오늘날 아주 중요한 식품공학 두 가지, 즉 빵 굽기와 면 생산이 가능했다. "고대 중국은 인구 증가로 농경이 발전한 게 아니라 농경 발전이 인구 증가를 초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밀과 고기의 관계도 재미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대부분 사냥꾼이 아닌 농부였다. 그들의 문화는 절제의 문화였고 고기를 별로 먹지 않았다. 생선은 해안 쪽에서만 먹었고, 기독교화된 이후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인식됐다. 그러나 북쪽의 켈트족(族), 갈리아족, 게르만족은 숲에서 생활하면서 주로 사냥을 하거나 가축을 길렀다. 당시 대식가는 '강한 사람'의 동의어였다. 고기를 먹는 북부 야만인과 밀을 먹는 문명화된 남쪽 사람들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연말에 메밀국수인 소바를 먹는다. 소바는 가는 해와 오는 해를 이어주는 국수다. 12월 31일에 먹으면 장수한다는 믿음도 남아 있다. 생일이나 결혼식에 긴 국수를 나눠먹는 것과도 닮아 있다. 그런데 소바는 도쿄의 국수다. 1년의 마지막 식사인 소바는 1868년까지 이 도시의 이름이기도 했던 에도 시대에 대중화되었고 다른 곳으로 퍼져나갔다. 면발이 연필처럼 두꺼운 일본 우동은 간사이 지방에서 귀족들이 먹던 국수였고, 오늘날엔 소바 가게들이 소바와 우동을 함께 팔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아침식사로 생숙주와 고수 가지 잎을 올린 국수 '포'를 먹는다. 국수집도 포라고 부르는데, 가볍고 맑은 소고기 국물에 생강과 회향, 가끔은 계피로 양념을 한 쌀국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날 베트남의 국가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 같은 이 포가 새로 만들어진 요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포는 일종의 퓨전 요리인 것이다. 소고기 국물은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식민지로 만들기 전 그 땅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소는 일하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포'라는 이름도 불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푀(feu)'에서 왔다고 한다.

    역사는 짧지만 일본 독신자들의 전형적인 식사가 된 라면, 러시아 모스크바의 증기 목욕탕에서 먹는 펠메니, 베트남의 쌀국수 등 국수 문화의 여러 현장을 후루룩 훑을 수 있는 책이다. 삽화와 함께 다양한 국수의 맛과 질감, 요리법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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