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chosun] 녹차·라면·김치·龍·두부… “우리가 진짜”

    입력 : 2008.01.04 20:30 | 수정 : 2008.01.06 08:24

    한·중·일 元祖 삼국지
    <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8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중·일 3국 사이에서 공통적인 문화를 둘러싸고 ‘원조’ 삼국지(三國志)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중·일 3국이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약 18%, 교역량의 17%, 인구의 23%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보유고는 중국일본, 한국이 각각 세계 1위와 2위, 6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이 인구야 예전부터 많았지만 최근 들어 비중이 커진 이유는 중국과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은 바 크다. 한·중·일 3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역의 하나가 되면서 이들 국가의 문화에 전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러스트 박상철

    외부의 관심이 커지면 관련 시장도 커지게 마련이다. 한·중·일 3국은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적지 않다. 이미지 선점은 곧 돈이 되기 때문에 이들 국가 사이에 원조 내지 종주국을 둘러싼 자존심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현상을 분야별로 짚어본다.

    녹차-“녹차 = 일본” 홍보에 놀란 한·중 추격전

    ‘녹차(green tea)?’ ‘일본차(japanese tea)?’ 한국에서는 흔히 웰빙이라고 말하는 ‘젠(zen·禪의 일본식 발음) 스타일’ 열풍 이후 건강과 깨달음을 상징하는 녹차는 아시아뿐 아니라 서구 시장에서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녹차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나라 또한 한국, 중국, 일본. 이 때문에 지금 세계 시장에서는 녹차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한 3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 쌍계제다의 고급 녹차 '벽소령'

    일본 사람들은 이미 녹차 산업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녹차를 ‘재패니스 티’라고 이름 붙이려 하고 있어 한국과 중국이 따라잡기 위한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이미 일부 외국 사이트에서는 ‘재패니스 티’라는 말이 쓰이고 있기도 하다. ‘그린 티(green tea)’로 충분히 잘 통용되고 있는 것을 일본이 굳이 ‘재패니스 티’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녹차에 대한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특히 녹차는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국 제품의 고부가가치를 지향하는 일본으로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상품이다.

    녹차라고 해서 삼국이 다 같은 녹차는 아니다. 제조법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덖는 과정에서 각국의 특징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중국은 향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솥에다 식물성 기름을 둘러가면서 차를 덖고 비벼 한 번으로 공정을 끝낸다. 일본의 경우에는 차의 색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압증기로 쪄서 색을 최대한 살린다. 반면 우리 녹차는 덖은 후 식히고 비비고 다시 3~4차례 덖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가장 손도 많이 가고 맛도 남다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사람들을 보낸 곳이 한국이었다는 사례가 있을 만큼 우수한 재배 환경에서 자란 우리의 녹차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녹차의 고급 브랜드화가 급선무다. 코트라(kotra) 국가브랜드관리본부의 브랜드 전문가 이창현 과장은 “녹차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각 기업의 연구와 브랜드화 작업도 중요하지만 마케팅 능력이 부족한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또한 시급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제주 감귤’과 같이 공동브랜드화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젠 스타일로 꾸민 실내 공간. photo 한샘

    젠(禪)스타일-일본, 중국의 선(禪)으로 세계화 성공

    수년 전 젠스타일이라는 단어가 웰빙 바람을 타고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열기가 뜨거웠지만 특히 서양 사회에서 젠스타일 열풍이 거셌다. 젠스타일은 건강과 평화, 웰빙에서 불교까지 동양의 좋은 점은 다 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 젠(zen)이라는 단어는 선불교에서 선(禪)을 뜻하는 일본어 표기이다.

    한국에는 ‘선’이, 그리고 일본에 선불교를 전해준 중국에도 ‘찬(chan)’이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zen’이라는 단어의 세계화에 성공했다. 사실 일본 선불교는 이미 오래전에 상업화에 성공했다. 중국 불교가 문화혁명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만나 이미 지나가버린 시대의 문화유산이나 관광 상품으로 전락해버렸지만 일본은 그들 나름대로 세속화의 길을 걸어 상업화한 것이다.

    일본의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1870~1966년), 스즈키 순류(鈴木俊降·1904~1971년) 선사는 일본의 선불교를 서양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 결과 이제는 서구 사회에서 선불교의 고유상표로 ‘ZEN’이 통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서양에서는 일본에만 ‘선’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파리 샹젤리제에서 용춤을 추는 중국인.

    용(龍)-중국, “드래곤을 룽으로” 개명 캠페인

    요즘에는 용의 영어 이름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사실 서양의 드래곤(dragon)은 문화적으로 ‘영웅이 물리쳐야 하는 대상’으로 상징화·표상화돼 있다. 그러나 동양의 용은 비록 나라별로 모양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서양의 드래곤(dragon)과는 모양도 완전히 다르고 기본적으로 신비의 대상으로 대부분 좋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지난해 10월 란저우에서 제1회 중화 용문화 란저우 포럼을 열고 서양인들이 8000년 된 중국의 용문화와 용 이미지를 사악하고 난폭한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전통 용의 영문 표기법을 ‘dragon’ 대신 중국의 발음을 따서 ‘룽(loong)’으로 개명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한국은 ‘용’ 표기를, 일본은 ‘류(ryu·용의 일본 한자음)’ 표기를 각각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한 슈퍼에서 신라면을 구매하는 미국인

    라면-중·일 원조 경쟁 속 한국은 해외시장 개척

    한·중·일이 서로 원조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식품 중 하나가 라면이다. 원조 경쟁이라면 사실 일본중국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일본은 ‘안도 시로후쿠’가 만든 라면이 최초라고 주장하고 있고 중국은 건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주장을 살펴보면 근대적 의미의 라면은 1937년에 발발한 중·일전쟁 때 처음 일본에 전래되었고 라면이 이때 중국군의 전투비상식량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일본군에게 생포 당한 중국군 포로들의 짐꾸러미에서 라면이 발견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기름에 튀긴 요리가 발달하였으므로 식품을 튀기게 되면 저장성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라면이 중국 군인의 비상식량으로 사용된 것은 수분이 적어 가볍기도 할 뿐더러 기름을 함유한 고칼로리 식품이어서 급할 때는 끓이지 않고 과자처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 초보적인 튀김라면이 비상식량, 전쟁식량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일본으로 전파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튀김라면은 먼저 상용화되지는 않았다.

    반대로 일본의 경우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편리성·신속성·경제성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종래의 라면을 개량 발전시켜 인스턴트 식품화했다고 주장한다. 2차대전 직후 패전한 일본은 심각한 식량기근에 시달렸고 미국에서 원조해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었지만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전통적 식생활습관 때문에 빵만으로는 공복감을 없애기가 힘들어 이때 밀가루를 주식으로 할 수 있는 라면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1958년에 안도 시로후쿠가 즉석라면으로 상용화했다.

    그는 일본인들이 즐겨먹는 생라면을 가정에서도 편리하게 먹을 수 있게 할 방법을 연구하다가 튀김요리에서 제조방법 힌트를 얻었고, 이렇게 시작된 것이 인스턴트 라면이다. 당시 라면은 아지쓰케면 (味附麵)으로서 면(麵) 자체에 양념을 가해 시일이 경과하면 쉽게 변질되는 단점이 있었는데, 1961년 묘조(明星)식품에서 현재와 같이 수프를 분말화하여 별첨한 형태의 라면을 개발했고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내 라면의 역사는 1963년 삼양식품에서 일본의 묘조(明星)식품과 기술 제휴하여 제품생산에 들어간 것이 그 시초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처음 나온 삼양라면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곡식 위주의 생활을 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던 인스턴트 밀가루 식품인 라면이 나오자 라면을 ‘라면(羅綿)’으로 해석해 옷감이나 실로 오인한 결과 구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회사원들이 직접 대로변에 점포를 설치하고 소비자에게 조리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것에서부터 보급을 시작했다. 여기에 1965년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분식장려 운동’을 시행하면서 라면은 대중 식품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일본중국이 라면의 원조 논쟁을 벌이고 있다면 한국은 종주국으로 행세하고 있다. 우선 1인당 연간 라면 소비율이 일본과 중국이 40~50개인 것에 비해 한국은 무려 80여개나 된다. 그만큼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 시장이 거대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한국 업체의 지속적 해외시장 개척으로 신라면은 70여개국에 수출돼 미국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위에서나 스위스 융프라우 꼭대기에서도 우리 라면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이 외에 삼양이나 오뚜기 등 다른 회사들도 외국에 라면집을 내는 등 세계에 우리 라면 알리기에 힘쓰고 있으며 실제로 캐나다태국 등지에서 한국 라면은 꾸준히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농심 홍보팀 최호민 부장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 굳이 매운맛을 줄이지 않고도 외국에서 한국 라면을 찾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매운 맛 때문에 처음에는 외국인들이 거부감을 보이지만 한번 먹으면 계속 찾게 되는 중독성이 있어 교민 시장은 물론 히스패닉과 중국인에게도 큰 인기”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라면을 뭐라고 부를까? 아직은 ‘인스턴트 누들(instant noodle·즉석면)’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아직 한·중·일 중 어느 나라도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국인 김장 담그기 대회에 참가한 외국인들.

    김치-국제식품규격위 “한국이 본산” 판정

    한국과 일본은 수년 전 김치의 영문 표기를 둘러싸고 국가 차원의 자존심 경쟁을 벌였다. 결과는 한국의 신승(辛勝). 김치가 한국 음식의 대명사인 것은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한국인들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음식의 대명사인 김치의 영문 표기를 둘러싼 국제 표준규격 경쟁에서 하마터면 숙적(宿敵) 일본에 패배할 뻔했고 이는 한국민에게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은 식문화에 대한 모방과 각색에 강한 면을 보여왔다.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돈가스, 덴푸라 등과 같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자기들 것으로 변화, 장착시켜 세계로 전파한 것이 적지 않다. 일본식 김치인 ‘기무치’는 김치의 매운 맛을 줄이고 일본인이 좋아하는 단맛과 각종 조미료를 더해 숙성시키는 과정 없이 만들었다. 이를 통해 누구나 접근하기 쉽게 변화시켜 일본의 일식과 함께 할 수 있는 음식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한국 김치에 대한 연구도 전문적으로 진행했다. 한국에 전문가를 파견해 우리에게도 잊혀져 가고 있는 전통 김치를 발굴해 시식하고 연구했다. 이에 따라 생각지도 못한 김치의 영문표기법 싸움까지 갔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국제 규격은 일본의 맹목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손을 들어줘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CODEX 국제 규격에 의하면 김치는 ‘김치의 주 원료인 절임 배추에 여러 가지 양념류(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무 등)를 혼합하여 제품의 보전성과 숙성도를 확보하기 위하여 저온에서 젖산 생성을 통해 발효된 식품’이라고 정의했다.

    김치박물관 관계자는 이런 사항에 대해 “일단 우리의 김치는 우수성과 김치의 종가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논란은 잠재웠다”며 “그러나 남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변화시키고 그것을 최고로 만드는 일본의 무서운 집착과 이를 통해 느낀 뼈저린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될 것” 이라고 당부했다.

    한국의 두유와 두부.

    두유-한국 두유 수출에 중국 네티즌 발끈

    언론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례 중 두유 원조 논쟁이 있다. 중국 네티즌들이 두유의 원산지가 중국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론 형성 사이트인 텐야(www.tianya.cn)에서 ‘kendingde’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은 “한국의 한 기업이 미국, 일본, 독일 등 14개 국가에 한국산 두유를 팔고 있다”며 “드라마 ‘대장금’까지 동원해 한국이 두유의 원조라고 알리고 있다”고 했다.

    두부의 고향이라고 알려진 중국 안후이성의 화이난에서는 “두부와 두유 모두 중국 서한 때 회남왕이었던 ‘류안’이 처음 만들었다”며 “효자였던 류안이 부모가 병을 앓자 매일 콩을 갈아 두유를 마시게 했던 것이 큰 효과를 보이며 빠르게 민가에 전파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부에 대한 원조 논란도 이에 못지않다. 현재는 외국에서 일본식 발음인 ‘도후(tofu)’를 쓰고 있어 일본이 이미 두부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를 선점했지만 중국의 화이난과 한국 강릉시 초당동 등 한·중 양국의 두부 명가들이 일본의 두부 제조법과 다른 독자적 두부제조법을 근거로 자국 상품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두부·단오제·풍수지리 놓고도 원조 시비

    이처럼 삼국은 공통적인 상품에 대한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해, 심지어는 남의 문화를 자기것화해 상품화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그만큼 좋은 문화 브랜드는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큰 몫을 하고 경제적 효과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일본이 스시(초밥)를 서양 사회에 고급 음식으로 보급해 세계 각국에 자국 상품을 비싸게 판 것이 좋은 사례다. 최근 심신수양 및 두뇌개발에 좋다며 서양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바둑의 경우 영어로는 ‘오리엔탈 체스(oriental chess)’ 또는 ‘고(go)’라고 쓴다. 고는 바둑의 일본어인 ‘ご(碁)’에서 유래했다. 현재 일본이 세계 바둑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못 내고 있지만 단어만 놓고 보면 서양인들에게 바둑의 원조는 여전히 일본인 셈이다.

    이들 사례 외에도 한·중·일 원조 삼국지는 갈수록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한국중국 사이에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국이 2004년 유네스코에 강릉 단오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해서 2005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중국은 자국의 문화유산으로 간주해온 단오절의 원조를 한국에 빼앗겼다고 받아들여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한국이 풍수지리 원조를 빼앗으려 한다는 오보가 중국에 전해져 중국 네티즌들이 발끈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브랜드 전문가들은 “한·중·일 삼국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는 브랜드 선점이 중요하다”며 “문화를 선점하면 국가 이미지 제고와 고부가가치화로 연결되는 효과가 있는 만큼 국가 차원의 지원과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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