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 날’

입력 2007.12.31 22:25

선우정 도쿄특파원
“한국 젊은 사람들 크데~.” 한국에 갔다 온 일본인들은 판에 박힌 듯 이렇게 말한다. “일본 젊은이보다 크다”는 뜻인데, 이런 말을 들으면 “서울 강남을 구경한 모양이군” 하고 말을 흐린다. ‘오세지(お世辭)’라고 불리는 일본식 인사치레에 장단 맞추기가 멋쩍은 탓이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공감한다. 도쿄 거리를 걷는 한국 젊은이들을 보면 같은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상당수가 “당연하지”라는 반응을 나타낸다.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크다’는 옛 선입관이 뿌리 깊은 탓이다. 실제로 한일 교육 당국 신체검사 자료를 보면, 요즘 청소년들의 평균 키(이하 고3 남학생 기준)는 한국이 3㎝ 정도 크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일본인이 작다’는 고정 관념에 익숙지 않다. 오히려 ‘일본 젊은이가 크다’는 선입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결국 세대 탓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해 이른바 ‘386세대’가 젊은 시절을 보낸 1980년 대까지 한국 청소년들은 일본보다 작았다. 1970년 1.9㎝였던 키 차이는 1980년 2.3㎝로 늘었다. 한국 청소년이 일본보다 작아진 현상은 80년대 말까지 이어진다. 당시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일본 젊은 사람들 크데~”란 말을 들은 기억이 선명하다. 일본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일취월장하던 때였다.

한국 청소년의 키가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였다. 정확히 1993년 0.2㎝ 차이로 역전한 이후 2005년 2.8㎝로 차이를 벌렸다. 몇 년 만에 역전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일본인은 작다”는 옛 기록과 속설로 미루어 1990년대 현상은 역전이 아니라 ‘재역전’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풍요’가 아닐까 한다. 일본이 키 차이를 벌린 1970년대는 60년대 고도성장기에 못 먹고 모아둔 국부(國富)를 기반으로 수입을 자유화한 시기다. 한국의 90년대 역시 그랬다. 1971년 7월 도쿄 긴자(銀座)에 문을 연 일본맥도날드 1호점, 17년 후인 1988년 3월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한국맥도날드 1호점은 그런 풍요의 물결을 상징한다. 한일 모두 맥도날드가 진출하는 무렵 쇠고기도, 햄소시지도, 버터도, 우유도 대중식으로 변했다. 풍요가 한국인의 성장(成長) 유전자를 자극한 것이다.

한국인의 강한 유전자(遺傳子)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오히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극심한 사회적 차별과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경제계와 문화계 곳곳에 진출해 있는 재일동포들은 한국인의 유전자가 환경이 정비됐을 때 얼마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강제로 끌려온 한국의 도공(陶工)들이 일본에서 극한의 예술혼을 발휘한 역사도 유전자와 환경의 상관관계를 훌륭히 증명한다.

수십 년간 잠자던 한국인의 성장 유전자를 일깨운 것은 풍요였다. 깨어난 유전자는 불과 몇 년 만에 한국 젊은이를 일본 젊은이보다 크게 키웠다. 그러면 한국을 선진국으로 키워낼 한국인의 숨은 유전자는 어떤 환경에서 깨어날 것인가? 두말할 것 없이 국민과 기업이 아무 눈치도 안 보고 일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일본 수준의 사회 질서를 확보하는 것이다. 자유화든, 법치(法治)든, 복지든, 개방이든 그것을 구축할 의무는 물론 정부에 있다.

2008년은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 원년(元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이 정부를 바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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