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08년을 열어갈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념보다 실용을 우선하는 노선을 택하겠다고 천명했다. 반가운 이야기다.

노무현 정부는 여러 가지 고정관념과 명분에 사로잡혀 무리한 정책을 많이 썼다. 기업 다각화와 차입 경영을 무조건 죄악시하여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와 신(新)산업 진출을 어렵게 하는 정책들을 추진하였다. 제조업의 시대는 지났다는, 증명되지도 않은 명제를 받아들여 현실성 없는 금융허브 전략을 추진하는 데 국력을 낭비하였다. 박정희 시대의 유산을 전면 부정하는 과정에서, 정부개입은 독재의 잔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렇지 않아도 90년대부터 약화되어 온 산업정책을 거의 폐기하다시피 하였다.

이명박 당선자가 이러한 우(愚)를 다시 범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희망적이다. 그러나 앞으로 출범할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실용주의가 되려면 자신들도 이념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명박 당선자 팀은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실용주의자라면 정부의 크기는 문제 삼아선 안 된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정부가 무슨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추진하느냐 하는 것이지, 그 크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정부가 무조건 좋다면, 상대적 크기가 훨씬 작은 후진국 정부들이 선진국 정부들보다 더 좋은 정부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후진국 정부들은 예산과 인력이 모자라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은 정부가 좋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필요하다면 정부 부처를 늘릴 수도 있고 공무원 수를 늘리며 보수도 올릴 수 있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무역정책도 마찬가지다. 그 동기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이명박 당선자 팀은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자유무역은 무조건 좋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미국이 비준하기도 전에 올해 초 우리 국회에서 한미 FTA를 비준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진정한 실용주의라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유무역이 좋다고 이야기해도,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자유무역을 하면, 시장이 확대되고 서로 경쟁을 통해 자극이 되어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서로 득을 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우리보다 생산성이 3배가량 높은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과 자유무역을 하면, 시장의 확대와 경쟁의 자극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기 전에 우리 기업들이 도태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득보다는 실이 더 클 것이다. 설사 한미 FTA가 우리에게 득이 된다고 생각하더라도, 진정한 실용주의자라면 올해 말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그리고 미국 의회에서의 한미 FTA 비준 여부를 보고 우리 국회에서 그것을 비준해야 할 것이다.

공기업의 민영화 문제도 그렇다. 이명박 당선자 팀은 공기업 효율화를 위해 민영화를 해야 한다며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싱가포르가 공기업 부문이 국민소득의 무려 22%를 생산하는 (산유국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공기업 의존도가 높은 나라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싱가포르는 한편으로는 자유무역을 추구하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지만 금융, 반도체, 조선, 운송 등 전략산업은 국가가 소유하고 전폭 지원하는 나라다. 싱가포르는 또 우리와 같이 공무원의 ‘청빈’이라는 명분에 매이지 않고 시장원리에 의해 공무원 월급을 사기업보다도 더 주는 나라이지만, 국민 주거의 안정을 위해 토지를 전부 국가가 소유하며, 85%의 주택을 주택공사가 공급하는 나라다.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비추어 볼 때 ‘극우적’ 정책과 ‘극좌적’ 정책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실용주의를 이야기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의 타파다. 고정관념에 묶여 이것은 절대적으로 좋고, 저것은 절대적으로 나쁘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진짜 실용주의가 될 수 없다. 부디 이명박 당선자가 모든 고정관념을 깨고 진정한 실용주의를 추구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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