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일상은 평온을 찾았지만… ‘정치’ 얘기만 나오면 입닫는 그들

입력 2007.12.28 23:55 | 수정 2007.12.29 19:04

반정부 시위·유혈 진압 100일만에 가본 미얀마
●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통행금지 지난달부터 해제 총 든 군인들 모습 사라져

● 시내에 깔린 사복 경찰들
신문 읽는 승려 찍으려하자 갑자기 나타나서 “찍지마”
● PC방을 찾아보니 부유층·외국인들만 이용 국제 전화 1분당 50달러

미얀마의 밤은 차가웠다. 지난 21일 저녁 8시. 한국에서 방콕을 경유해 미얀마(옛 버마)의 최대도시 양곤에 도착했다. 유일한 국제공항 건물 앞 4차선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폐차 일보 직전의 택시 10여 대만이 매캐한 냄새를 내뿜었다. 덜덜거리는 엔진 소리, 다 찢겨진 내부 쿠션, 구멍 난 바닥, 움직이는 것만 해도 신기한 택시였다.

택시를 타고 30분이 지나 시내 중심가로 들어서자 곳곳에 난전을 펴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담배, 과일, 음식을 파는 상인들이 다 깨어진 보도블록 위에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들이 나온 가족은 물론 시위의 도화선이었던 승려들도 삼삼오오 자유롭게 거리를 거닐었다. 30대의 택시 기사는 “시위가 끝나고 한 달 정도 지나면서부터 이전 모습을 되찾았다”며 “시내 중심가에는 친구들과 앉아서 차 한 잔 마시는 사람들로 보도가 꽉 찰 정도”라고 했다.



일상의 속내

3개월 전 대규모 민주화 시위와 유혈 진압이 발생한 술레 파고다 인근 거리는 일상의 평온한 모습이다. 독일, 영국, 일본, 한국인 등 여행객을 맞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두려움의 기색은 없다. 호텔 역시 지난 10월 일시적으로 여행 취소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이제 예전 수준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사업가들이 선호한다는 양곤 시내 트레이더스 호텔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이은영(35)씨는 “지난달부터 서서히 작년 수준에 맞춰가고 있다”며 “밤 10시 이후 내려졌던 통행금지도 10월 중순에 4시간으로 단축됐다가 11월 초순부터는 완전 해제됐다”고 했다. 10월까지만 해도 거리 곳곳을 지켰던 총을 든 거리의 군인들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양곤의 대표적 관광지인 ‘인야 호수 공원’ ‘깐도지 호수 공원’ 또한 겉모습은 평화롭기만 했다. 주말 나들이 인파와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로 공원 벤치는 만원이었고,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의 표정은 밝았다. 미얀마 대표 시장인 ‘보조 아웅산(아웅산 장군이라는 뜻)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댔고, 미국 영화를 걸어놓은 극장 앞 커피숍은 웃고 떠드는 소리로 요란했다. 차이나 타운 역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차도는 물론 보도 또한 꽉 막힐 정도였다.
지난 9월 26일, 반정부 시위 발생 9일만에 미얀마 군부는 승려와 일반 시민을 상대로 무력진압에 나섰다. 군이 총을 쏘고 최루탄을 발사하자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있다. /AP

아침, 저녁으로 한국 드라마가 국영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기 때문에 한국의 인기 또한 높다. 하지만 평화롭고 다정다감해 보이는 사람들도 정치적 이슈에는 ‘굳게’ 입을 닫았다. 관광 가이드를 하겠다던 현지인들도 취재 때문이라는 말만 들으면 하나같이 전화를 끊어버렸고, 편하게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도 정치와 관련된 말을 꺼내면 엄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자리를 피했다.

사복 경찰이 전국 곳곳에 깔려있다고 말하는 그들은 “폴리스(police)”란 단어를 입버릇처럼 꺼냈다. 하나같이 자신이 감시를 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9월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던 승려들은 취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슈웨다곤 파고다, 술레 파고다에서 만난 승려들은 기자는 물론, 외국 관광객과의 대화를 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4명의 독일 관광객들이 한 승려에게 다가가자 오던 길을 돌려 달아났고, 어렵사리 말을 붙인 승려도 ‘시위(demonstration)’라는 말 한마디에 자리를 떴다. 현지 관광 가이드 뚜세이씨는 “시위 이후에는 우리도 외국인 손님들에게 스님에게는 말을 걸지 말라고 한다”고 했다.

22일 오전, 양곤 외곽의 조용한 사찰을 찾아 나섰다. 택시로 2시간 30분,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다는 한 사원에 들어섰다. 미얀마에서는 어떤 사원이라도 출입은 자유롭다. 현지 전통에 따라 신발과 양말을 벗고 사원으로 들어서면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 체이웬(가명·28)씨는 3개월 전 공인 승려 시험에 합격해 정식 승려가 됐다. 시위에 관해 물었다. “시위요? 모릅니다. 모릅니다.” 시위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돌리자 갑자기 그의 표정은 굳어졌다. “팡! 팡! 두렵습니다. 나는 승려일 뿐입니다.”
지난 9월 미얀마 군부가 총과 최루가스를 앞세워 시위대를 무력 진압한 장소. 왼쪽 건물이 술레 파고다, 오른쪽이 양곤 시청이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 체이웬씨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위에 나섰던 스님들 중에는 경찰서로 끌려가 수십 차례 총으로 얼굴을 구타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잡혀가지 않은 스님들에 대해서는 가족들을 붙잡아다가 조사를 하고, 간접적으로 억압을 가합니다. 연좌제지요. 스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도 정부 사람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모른 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시위에 참가한 스님들을 찾아내 계속해서 연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만난 출가 2년째의 한 승려는 “이번 시위로 양곤 시내에만 4곳의 절이 강제로 문을 닫았다”며 “경찰은 시위에 참가한 스님을 붙잡아 환속을 강요하고, 가사(袈裟)를 강제로 벗긴다”고 했다.

미얀마에서는 사진 촬영도 제한을 받았다. 특히 대학이나 관공서, 아웅산 수치 여사의 가택 주변 촬영은 모두 금지된다. 관광 가이드들이 먼저 나서 외국인들의 촬영을 제한한다. 1996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군 정부는 전국 45개 대학에 대해 휴교령을 내렸다. 2000년 다시 문을 열었지만 2003년 정부는 대학을 단과대학별로 분리해 도시 외곽 지역으로 옮겨놓았고, 외국인 출입은 제한된다. 국내 소식이 외부에 전해지길 꺼리는 군부는 경찰을 통해 외국인들의 대학 관광까지 철저히 통제했다.

택시를 타고 양곤대학을 두 차례 도는 사이, 정문을 지키던 경찰은 계속해서 기자를 쳐다봤다. 두 개의 출입문에서 24시간 지키고 있는 경찰이었다. 정문에 내려달라는 말에 택시 기사는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시내에서 만난 대학생 치치(21·간호학과)씨는 “현지인들도 학교에 들어갈 때는 거주지와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을 적어야 한다”며 “외국인이 대학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기록될 수 없는 나라

미얀마 사람의 90% 정도는 불교 신도이다. 주말이면 절을 찾아 기도를 하고, 일정액을 보시하는 사람들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신의 아들을 짧게는 3~6개월, 길게는 2~3년 정도를 출가시키고, 아이들은 승려 생활을 체험한다. 그만큼 사람들에겐 승려에 대한 존경이 있고, 믿음이 강하다.

미얀마 종교성이 위치한 ‘까바애 사원’, 동자승들의 교육기관을 포함한 ‘나가레이꾸 사원’, 거대한 와불을 자랑하는 ‘짜욱따지 사원’ 등에서 만난 시민들은 한결같이 “우리는 스님을 존경하고 따른다”고 했다. 호텔 웨이터로 일한다는 민아웅(32)씨도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절에 보시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한다”며 “스님들의 평화시위에 경찰이 총을 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했다.
양곤 시내 그늘진 곳에서 하얀색 셔츠를 입은 두 명의 사복 경찰이 주변을 살피고 있다. 시민들은 이들을 피해 주위를 돌아서 지나다녔다.

미얀마 군정에 의해 4년이 넘게 가택 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숨기지 않는다. 그녀에 대한 질문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리스펙트(respect)” “나라면 그렇게 살지 못할 거다” “안타깝다” “우리의 영웅” 이라고 답했다. 정치적인 질문에 민감한 사람들도 아웅산 수치에 대해 물으면 누구나 한마디씩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현재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집 주변 반경 100m 이내는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차도와 보도에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지키고 있다.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불과 200m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대사관 직원 중 실제 그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얀마에서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모두 국영으로 운영된다. 서적 또한 철저히 통제된다. 양곤 시내 서점 대다수는 영자 서적을 팔고 있지만 경영, 경제, 영어, 역사 등 비정치 관련 책들이다. 그것도 가격은 20~30달러 수준. 한 달 잘해야 30~40달러를 버는 일반 서민들이 사 보기엔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미얀마 현지 언어로 적힌 책들은 1000짯(kyat·비공식 환율로 약 722원)에서 5000짯에 팔리고 있었지만 대부분 복사본이었고, 종류도 소설, 언어, 연예 스포츠 잡지, 식물 관련 서적뿐이었다. 750짯의 현지 신문과 1200짯의 달하는 국영 영자지 ‘미얀마 타임스’는 군부 동향만 전하는 ‘찌라시’ 신문에 불과했다.

만달레이대학에서 영문학 석사학위까지 받았다는 마웅애(여·가명)씨는 “미얀마에는 정치 서적이 없다고 보면 된다”며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대학생들도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선다”고 영어로 귀띔했다.

때마침 서점 앞 가판에서 50대 승려 한 명이 국영 신문을 읽고 있었다. 외국 뉴스를 읽고 있던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진기를 꺼내자 하얀 윗옷에 슬리퍼를 신은 40대 초반의 남자가 앞을 막아섰다. “노(No)! 노(No)!” 굳은 표정의 그는 재차 사진을 찍지 말라고 강요했다. 자리를 피했다가 1시간 후 다시 서점을 찾아 주인에게 그가 누군지를 물었다. “폴리스.” 서점 주인은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한 40대 현지인은 “양곤의 사복 경찰은 언제, 어디에 있는진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을 항상 감시하고 있다”며 “반정부 활동을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인은 물론 현지인들에 대해서도 모두를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주요 거리의 그늘진 곳에는 꼭 한두 명의 30~40대 남성들이 주변을 노려보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다녔다.


지난 22일 양곤 시내 까바애 사원. 미얀마 유명 사찰은 안정을 되찾았다. 동자승 3명이 기도를 위해 실내로 들어서고 있다.

미얀마의 지금

양곤 중심가에 위치한 PC방을 찾았다. 지난 10월까지 차단됐던 인터넷도 이제는 허용되고 있다. 군에서 외부 접속을 막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야후, 구글, MSN 등에서 제공하는 외부 뉴스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가격은 15분당 200짯 수준. 하지만 거리에 사람이 넘쳐나는 주말 오후에도 PC방엔 외국인 셋,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뿐이었다. 종업원은 “잘사는 집 아이들이나 외국 관광객이 대부분”이라며 “외국계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회사에서 인터넷을 하기도 하지만, 일반 서민들, 특히 주부들 중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전화 또한 마찬가지다. 국제전화는 1분당 50달러에 달하고, 동전 전화기가 없기 때문에 전화를 걸려면 교환원이 있는 전화 부스를 찾아가야 한다. 휴대폰은 100만~200만원은 줘야 살 수 있다. 외부 소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미국의 소리(VOA)’ ‘자유아시아라디오(RFA)’ ‘BBC’ 등 라디오 방송뿐이지만 현지 청취율은 높지 않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교민은 “미얀마의 소승불교로 인해 사람들은 깨달음을 중요시하고, 정치나 외부 세계가 아닌 개인의 수행을 위해 살아간다”고 했다. 대학생 웨이띠씨 역시 “미얀마 사람들은 이지 고잉(easy going) 하는 성향이 있다”며 “돈 버는 것은 중국 사람, 아끼는 것은 인도 사람을 닮아야 한다고 말할 만큼 우리는 그냥 버는 만큼 벌고, 사는 만큼 사는 성향이 있다”고 했다. 승려에 대한 폭력, 시위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 발포에도 불구하고, 한 달 만에 이전의 모습을 회복한 사실이 그들에겐 전혀 신기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많은 수의 미얀마 젊은이들은 취업을 위해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호주 등으로 빠져나간다. 지난 10년 동안 미얀마는 10배 이상 환율이 올랐고, 금값은 5년 만에 4배 이상 올랐다. 천연가스는 물론 원목, 쌀, 아연, 루비, 사파이어 등 아시아 최고의 자원 부국이지만 미얀마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오전, 택시를 타고 ‘슈웨다곤 파고다’ 인근에 위치한 2층 건물의 버마민족민주동맹(NLD) 본부를 찾아 들어섰다. 아웅산 수치가 당수로 있는 미얀마의 유일 야당이다. 3명의 사복 경찰이 사무실 건너편에서 내부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제재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30평 사무실 한편에는 18명의 학생이 50대 현지인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었고, 출입구 뒤편에서는 당원들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주부들에게 설탕과 물약을 나눠줬다. 1층 사무실 안쪽 공간과 2층은 회의실로 사용한다. 현재 NLD 당원 수는 100명이 조금 넘으며, 운영은 60만~70만 정도의 기부금으로 꾸려나가고 있다. 여성분과위원회의 한 여성은 “사복 경찰로 보이는 이들이 30분 단위로 돌아다니고 있지만 우리 활동에 물리적인 압력을 가하진 않는다”며 “하지만 24시간 우리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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