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전 대표 김경준(구속 기소)씨가 21일 또 자필 메모를 공개했다. 지난 20일 홍선식 변호사를 만났을 때 쓴 것으로 홍 변호사가 하루 뒤인 21일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에서 공개했다.
김씨는 이 메모에서 검찰이 자신을 회유했다는 이른바 '회유 메모'는 사실이 아니라고 검찰 수사팀에 사과했다(지난 18일)는 일부 언론 보도는 거짓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정치권 변호사들을 대거 해임하겠다고 검찰에서 밝혔다는 보도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홍 변호사는 "이런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선 정정 보도나 손해 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씨의 이런 입장은 지난 18일 영문 편지를 공개할 때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는 이 편지에서 “내 문제로 큰 소동을 빚은 점에 대해 한국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내 사건이 개인적인 문제로 방어되길 원한다. 검찰과 있었을 수도 있는 오해가 더 지속되는 것을 피하고 싶다”고 했다.
이 문맥만을 놓고 보면 김씨는 일정 정도 ‘회유 메모’에 대한 사과의 뜻을 검찰에 밝힌 것으로 읽힌다. 검찰 주변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다. 이 영문 편지를 공개하던 날 ‘회유 메모’에 대해 수사팀에 “내 뜻이 잘못 전달됐다”면서 사과했다는 것이다. 정치권 출신 변호사들을 해임하겠다는 뜻도 수사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김씨는 이틀 만에 정반대의 얘기를, 그것도 이회창 후보측 변호사였던 홍 변호사를 통해 외부로 전달했다. 검찰은 몹시 불쾌한 눈치다. “워낙 수시로 바뀌는 김씨의 말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에 모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이번에 공개된 메모를 썼다는 20일에도 검찰에선 “홍 변호사가 정치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변호인으로 유지하고, 나머지 정치권 변호사들은 모두 해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영문 편지를 썼던 18일에도 비슷한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래 놓고 홍 변호사에겐 다른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양측의 말대로라면 김씨는 검찰과 변호인에게 각각 다른 얘기를 한 셈이 된다. 왜 그런 것일까. 법조계 주변에선 “김씨가 약간 혼란스러운 상황에 다다른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기 사건을 정치적인 문제로 끌고 가면 형량(刑量)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보면서도 정치적 사건으로 몰고 가고 싶은 유혹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중견 변호사는 “김씨가 자신에게 유리한 게 무엇인지를 놓고 오락가락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홍 변호사의 언급에서도 그런 심리가 읽힌다. 홍 변호사는 “김씨는 검찰과 불필요하게 부딪치기 싫다는 의사가 있다”면서도 “검찰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특검에 대해선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