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몽족’

조선일보
  • 김민구 기자
    입력 2007.12.18 00:49 | 수정 2007.12.18 03:35

    라오스 소수민족… 베트남전 때 美 도와 싸웠다 버림받아
    공산정권 보복 표적 돼… 수만명 숨지고 정글서 생존투쟁

    “베트남전쟁에서 그대들(미국)을 도왔던 우리(라오스 몽족 전사)에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을 제공해달라.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폭탄을 떨어뜨려 이 비참한 삶에 종지부를 찍어달라.”

    베트남전쟁 때 미국 CIA(중앙정보국)를 도와 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미군 포로를 구출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몽족(族) 용병 수천명이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30여년이 넘은 지금도 라오스의 정글에 숨어 비참하게 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7일 보도했다.

    라오스 북부 비엔티안 지방을 지나는 메콩강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밀림. 15시간을 걸어서 산과 계곡을 지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을 기어서 통과하자 맨발에 해진 옷을 입은 남자들이 AK-47 소총을 들고 지키는 움막촌이 나타났다. 베트남전 때 CIA의 용병으로 일했던 몽족 전사 5명이 이끄는 50여명의 가족이 모여 사는 은신처였다.

    이들은 라오스군의 추격을 피해 수시로 거처를 옮기고 쥐를 잡아먹는 생활을 수십년간 해왔다고 NYT는 보도했다. 베트남전 당시 ‘미스터 토니’라는 CIA 간부의 지휘를 받았다는 샹 양(Yang·58)은 베트남전이 끝난 이후 처음으로 자신들을 찾아온 미국 신문기자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투항하더라도 라오스 정부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미군을 위해 싸웠다는 사실 때문에 이 정글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월에 정부군의 공격으로 다섯 살 된 남자 아이가 죽었고, 5월에는 여성 1명과 그의 두 살배기가 숨졌다”고 말했다.

    1960·70년대 동남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미국 CIA가 벌인‘비밀 전쟁(Secret War)’의 용병으로 일했던 라오스 몽족의 자손들이 AK-47 소총을 들고 밀림을 정찰하고 있다. 이들은 라오스 공산군의 추적을 피해 수십년째 정글 속에 숨어 살고 있다. /NYT
    CIA는 베트남전쟁 기간 중인 1961~1975년 베트남 주변국의 소수 민족을 무장시켜 해당국의 공산화를 막고, 북베트남의 후방을 교란하는 ‘비밀 전쟁(Secret War)’을 수행했다. 이 전쟁에서 라오스의 몽족은 가장 용맹한 전사였다. 방 파오 장군이 이끄는 몽족군이 주둔했던 롱청은 한때 30만명이 사는 라오스 제 2도시로 번성했다. 그러나 1973년 미군이 철수하자 상황은 악몽으로 바뀌었다.

    몽족은 베트남과 라오스에 들어선 공산정권의 표적이 됐다. 수만명이 살해됐고, 10만명이 고향을 떠나 태국으로 피난했다. 몽족 전사 중 일부는 미국 등으로 정치적 망명을 할 수 있었지만 5000여명은 여전히 라오스에 남아 쫓기고 있다.
    라오스의 밀림에서 숨어 살고 있는 몽족 CIA 용병과 그 자손들. 허름한 옷차림에 헐벗고 고단한 삶이 짙게 배어 있다. /NYT
    미국은 그러나 몽족을 버렸다. 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한 미국 정부는 지난 6월 미국에 거주하던 몽족 지도자 방 파오 장군을 체포했다. 혐의는 “라오스 공산정권의 전복을 기도했다”는 것. 라오스 정부는 수십년간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는 라오스 내 몽족 CIA 용병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고 NYT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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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Hmong)族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에 흩어져 살고 있는 소수 민족으로, 중국의 소수민족인 묘(苗)족 계통이다. 라오스 몽족 남성의 80%가 베트남전 당시 미국 CIA의 용병으로 일했다. 이 때문에 라오스가 공산화되자, 상당수가 태국으로 피신했다가 미국·호주·프랑스 등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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