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4년 3월 15일, 로마 폼페이우스 극장에서 만 55세의 절대 권력자 카이사르가 단검을 빼든 원로원 의원 60명에게 에워 싸였다. 암살 명분은 ‘공화정 수호’였다. 암살자들은 살아있는 인간이면서 신(神)에 육박한 권능을 획득한 카이사르를 살해함으로써 로마가 제국(帝國)이 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들은 저마다 필기용 철필 통에 숨겨 온 단검을 꺼내 카이사르를 마구 찔렀다.
독재자는 끝까지 저항했다. 청년 장군 마르쿠스 브루투스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찔렀을 때 불현듯 저항을 멈추고 부르짖었다. “아들아, 너마저?”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오랫동안 사랑한 여자 세르빌리아의 아들이었다. 카이사르는 토가로 머리를 감쌌고, 일찍이 자신이 패퇴시킨 숙적 폼페이우스의 동상 아래 굴러 떨어져 숨을 거뒀다.
갈리아·브리타니아·게르마니아·마케도니아·이집트를 차례로 격파한 뒤 내전을 평정해 절대 권력을 거머쥔 카이사르가 파르티아 원정을 목전에 두고 숙적의 동상 밑에서 절명하는 것으로 저자 에이드리언 골즈워디(Adrian Goldsworthy·38)는 전기를 맺는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대 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청년 학자의 문장은 그만큼 간결하고 품위 있고 힘이 넘친다.
그는 “카이사르는 이런 인물이었다”고 서둘러 규정하는 대신,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그의 다면적인 면모와 상충하는 욕망, 군사적 천재와 인간적 허영, 셀 수 없는 염문과 비극적 말로를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그는 친절하고 관대한 성품을 지녔으며 원한에 얽매이지 않고 적을 친구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잔인한 태도를 보이는 것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바람둥이였으며 아내와 수많은 애인들에게 매우 불성실했다. 그는 허영에 가까울 정도로 외모에 자부심이 강했다. 아마 그는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에게 매료되었을 것이고, 이는 더욱 다른 사람들을 끄는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인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빚을 내서 은제 갑옷을 입은 검투사 수백 쌍이 등장하는 경기를 개최하곤 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사람들은 그가 덧없는 명성을 얻으려고 낭비를 한다고 비판했지만, 사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을 헐값에 사 모으고 있었다”고 평한다.
그는 냉혹과 자비를 겸비했다. 청년 시절 소아시아 팔마쿠사 섬에서 해적들에게 붙잡혔을 때 카이사르는 “나중에 너희들을 십자가 형에 처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몸값을 내고 풀려난 뒤 그는 함대를 조직해 해적들을 소탕했다. 그러면서도 “함께 지낸 정리를 봐서”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목을 찔러 고통을 덜어주는 은전을 베풀었다.
그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폼페이우스, 당대 최고의 갑부 크라수스와 연대해 정권을 장악한 다음 갈리아를 정복했다. 자신의 등에 칼을 꽂으려는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에 맞서서 조국을 쳤지만, 승자로서 로마에 입성한 뒤엔 자신을 향해 무기를 들었던 사람들을 모두 용서했다. “자비와 관용을 통해 강해지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방식의 정복”이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였다. 패퇴하는 폼페이우스를 이집트까지 추격했지만 막상 이집트인들이 그의 목을 바쳤을 때는 눈물을 보였다.
그는 사치스러운 사람이었다. 남들이 모두 반소매 토가를 입을 때 혼자 긴 소매 옷에 느슨한 허리띠를 맸다. 섬세하게 머리를 다듬고 가려울 땐 손가락 하나로만 긁었다. 영광의 절정기에 원로원이 그에게 바친 갖가지 특권 중에서 카이사르가 특히 흡족하게 생각한 것은 ‘보통 때도 황금 월계관을 쓰고 다닐 수 있는 권리’였다. 루비콘을 건넌 사나이도 머리가 벗겨지는 데는 상당히 민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병영에서는 부하들과 나란히 사투를 벌였다. 그는 부하들을 ‘병사들’이라고 부르는 대신 ‘전우들’이라고 부르는 장군이었다.
카이사르는 유혹의 달인이었지만 오랫동안 마음을 준 여인은 많지 않았다. 로마에 쫓아온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에게 “네가 낳은 내 아들에게 ‘카이사리온’(카이사르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다”고 허용했으나, 열정에 휘둘려 야망이 무뎌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사가들은 암살 전야의 로마가 불길한 예후에 가득 찬 시공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암살 전날 카이사르는 지인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암살 가담자도 낀 자리였다. 식후의 화제는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 죽음이냐”로 흘러갔다. 거의 말이 없던 카이사르가 불쑥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죽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마를 위해서는 내가 살아있는 편이 낫다” “내가 죽은 뒤엔 평화가 유지될 수 없다”고 예언에 가까운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암살 음모가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을 땐 간단히 일축해버렸다. 실제로 카이사르가 죽은 뒤 로마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내전에 휩싸인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인간’ 카이사르의 생애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카이사르의 숨결이 책을 읽는 이의 이마에 훅 하고 느껴진 순간, 문득 기원전 1세기 세계사의 판도와 그 시대 사람들의 고뇌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