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트렌드 샷'] 그립다! 배짱 있는 잡지들

조선일보
  •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07.12.12 23:19

    잡지 창간 붐이다. 잡지들도 점점 디테일해져서 ‘골드미스’만을 위한 잡지 혹은 상위 2%만 본다는 초절정의 명품 잡지 등 타깃층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근데 잡지가 생긴다고 하면 걱정스럽다. 시장이 꽝꽝 얼어버린 이 상황에 잡지가 잘 될까란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잡지에 대한 애정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엔 비슷한 콘셉트의 잡지들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보그’ ‘엘르’ ‘바자’ 같은 패션지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완전히 다른 잡지다. 하지만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차이점을 거의 알 수 없는 잡지란 얘길 듣곤 한다.

    그 옛날 ‘뿌리 깊은 나무’엔 숨어 있는 장인들의 기사를 연재하던 기사가 있었다. 홍대에 있는 ‘온고당’이란 헌책방에서 그때의 연재를 묶은 너덜대는 단행본을 찾아내고 나는 만세삼창을 부를 뻔 했다. 내친김에 별을 헤던 시인 윤동주의 마음으로 떠나간 잡지들의 이름을 불러보자.

    샘이 깊은 물, 월간 멋, 키노, 지오, 이매진이여……!

    디자이너 안상수가 만들었던 ‘보고서’ 같은 파격적인 잡지들, 금세 망해버렸지만 인디적인 냄새가 풀풀 나던 ‘리뷰’, 디자인과 레이아웃은 가히 초등학생 수준이었지만 콘텐츠 하나만큼은 천하장사 허벅지 부럽지 않던 ‘오늘예감’ 같은 잡지들은 이젠 볼 수가 없다. 외국에서 ‘라이선스’를 사와 잡지를 창간하는 붐이 일다보니 독특한 색깔의 로컬지를 만들겠다는 열망은 점점 사라지나보다. 한마디로 ‘돈’이 안 되는 것이다.

    얼마 전 EBS에서 잡지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플레이보이’ ‘롤링스톤’부터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창간한 ‘미즈’ 같은 페미니스트 잡지까지 다양한 잡지들의 역사가 쏟아져 나왔다. 흑인을 최초의 표지 모델로 쓴 ‘애보니’같은 잡지부터 동성애자들을 위한 잡지인 ‘애드버킷’까지 색깔이 참 다양하다. 나는 그것이 역사도 짧고 문화적으로도 빈약하다는 미국의 힘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들은 ‘다양성’이란 콘텐츠를 정확히 붙잡고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나라만큼 잡지를 잘 만드는 나라도 없다. 겨우 열 명 남짓의 편집팀 인원으로 그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며 한 달에 한 권씩 전화번호 두께의 잡지를 만들어낸다는 건 굉장한 거다. 그렇기 때문에 ‘정체성’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확고한 정체성 없이는 시류에 휘둘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종류는 다양해졌지만 결과적으로 잡지의 다양성이 더 빈곤해지는 지금, 창간을 준비하는 잡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그 옛날 우리에게도 장뤽 고다르나 프랑소와 트뤼포들이 필진으로 참여했던 ‘까이에 뒤 시네마’에 버금가는 ‘키노’같은 잡지가 있었다. 정성일 같은 배짱 좋은 편집장이 존재했었다. 물론 망했다. 재정악화 때문이다.

    하지만 ‘키노’가 남긴 유산은 대단한 것이었다. 영화평 하나 읽자고 사전을 대동해야 했던 ‘논문’ 수준의 이 잡지 때문에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왔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렇다. 누군가는 그 잡지를 읽고 꿈을 키웠기 때문에 한국에 많은 영화학교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올해 창간한 SF 장르잡지인 ‘판타스틱’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한국에서 장르물이 안된다는 고정관념을 이 잡지가 어떻게 깨나갈 것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복거일이나 듀나 같은 작가의 단편과 루이스 캐럴(‘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작가)의 장편 연재, 온다 리쿠, 미야베 미유키 같은 소설가의 인터뷰, 도시괴담에 뱀파이어 시리즈까지 이 잡지엔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솔직히 이런 잡지라면 유세 현장에 쫓아가서 마이크에 대고 읽어보라고 선전하고 싶을 정도다. 제발 망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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