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하고 억울… 등급제 수능 당장 없애라”

입력 2007.12.08 00:48 | 수정 2007.12.08 02:49

● 성적표 받던 날… 고3 교실 ‘대혼란’
3명 중 1명 “기대했던 등급과 전혀 달랐다”
예상보다 등급 오른 학생들 “로또 된 기분”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이 발표된 7일 오전 서울 미아동 영훈고 3학년 교실. 담임교사가 등급으로만 표시된 성적표를 나눠주기 시작하자 학생들의 얼굴이 상기됐다. 일부 학생들은 ‘예상 등급과 다르다’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당황해 했고, 성적표를 받은 후 엎드려 우는 여학생도 있었다. 서울 중곡동 대원여고 고 3 교실도 상황은 비슷했다. 평균 3명 중 1명의 학생이 “예상과 전혀 다른 등급이 나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날 가장 큰 혼란을 겪었던 건 이과계열 상위권 학생들. 수리 ‘가’형 문제가 쉽게 출제돼, 2점짜리 한 문제를 틀리거나 만점을 받았을 때만 1등급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점 혹은 4점짜리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떨어진 것이다.

신주섭(18·영훈고3)군은 “수리 ‘가’가 아무리 쉬웠어도 4점짜리 한 문제 틀려서 2등급 받을 줄은 몰랐다”며 “믿고 싶지 않고 억울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노모(18·대원여고3)양은 “수리 ‘가’를 포함해 3개 영역에서 1문제 때문에 등급이 갈렸다”며 “시험 총점은 나보다 낮은데 등급이 잘나와 유리해진 애들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대원여고 위준호 교사는 “서울대 의대를 목표로 하던 한 재수생은 이번에 수리 ‘가’에서 4점짜리 한 문제 틀리고 나머지는 다 맞아 총점 496점(500점 만점)을 받았지만 수리 ‘가’가 2등급이 되는 바람에 의대는 고사하고 서울대 좋은 과를 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영훈고 김장업 교사는 “상위권 학생 중 1문제 차이로 2등급 된 경우가 굉장히 많다”며 “교사들로서는 억울해하는 학생들을 보며 애간장이 타고 진학 지도 하기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발표된 7일 서울 광진구 대원여고에서 한 여학생이 성적표를 보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예상보다 등급이 오른 학생들도 있었다. 이수진(18·영훈고3)양은 “3등급으로 예상했던 언어영역이 2등급으로 뛰어 기분이 좋다”며 “언어가 어렵게 출제된 게 오히려 득이 됐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한 학생은 “옆 친구보다 한 문제 더 맞아 등급이 올라갔다”며 “친구에게 표현은 못하지만 로또 당첨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등급제 수능에 대한 불만과 혼란을 토로하는 분위기였다. 한 학생은 “친구보다 가채점 점수는 높은데 똑같은 등급이라는 게 억울하다”며 “공부 많이 한 애보다 운 좋은 애가 유리한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유장욱(18·영훈고3)군은 “정확한 등급컷 점수가 안 나온 상태에서 예상보다 떨어진 내 등급을 납득할 수가 없다”며 “답안 마킹을 실수한 건지, 가채점을 잘못한 건지 모르겠고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최아영(18·대원여고3)양은 “같은 2등급이라도 상·중·하로 나눠야 정확한 실력이 표시되는 것 아니냐”며 “등급제 수능을 폐지하고 다시 표준점수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공간도 이날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한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내일 등급제 수능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하러 가자’, ‘등급제 수능을 당장 없애라’는 등의 글이 쏟아졌다. 수험생 사이트 ‘오르비’에 글을 남긴 한 네티즌은 “재수생들이 엄청 쏟아질 것”이라며 “이번 등급제 수능은 수험생이 아닌 학원을 위한 입시였다”고 했다. 수험생들은 인터넷 상에서 서로 가채점 점수와 등급을 공개하며 등급구분점수를 예상하고, 학원들이 발표한 수능배치표를 돌려보느라 분주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날 성적표를 나눠주는 교사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숙명여고 김정훈 교사는 “고3 교실은 지금 한마디로 혼돈의 도가니”라고 전했다. 때문에 많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안전지원’을 권했다. 대원여고 이종철 교사는 “배짱 지원은 자제하고 무조건 두 군데 정도는 안전지원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섭 심한 現입시에서 등급제 자체가 코미디” 

2009학년도 입시부터 폐지 가능 여부 논란 

등급제 수능에 대한 수험생, 학부모, 교육계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다음 입시인 2009학년도 입시부터 곧바로 등급제가 폐지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이기 때문에, 논란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9학년도 대학입학전형계획을 2007년 8월에 발표했고, 이미 등급제 수능을 치러야 한다고 규정했다. 대입 계획을 1년 6개월 전에 발표해야 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교육부 대학학무과 김규태 과장은 “대입 제도 변경에 대해 정해 놓은 관련 법령은 ‘1년 6개월 전’이라는 시행령이지만, 상식적으로 고1이 되기 전인 중3 때 3년 뒤 자신이 치를 대입제도를 알아야 한다”며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등급제 수능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남대 교육학과 김재춘 교수는 “내신 등급제는 고1과 고2 때도 지속된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바꾸기 어렵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가 있는 등급제 수능을 내년부터 곧바로 바꾸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률도 아니고 정부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행령이나 고시(告示)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대학 입시에 쓰이는 국가 고사를 치르면서 등급제를 쓰는 나라는 있다. 그러나 자격고사 정도로 쓰이고 실제 입시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든지, 아니면 여러 번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돼 있다. 영국의 경우 등급으로 성적이 나오는 ‘A레벨’이라는 국가 시험이 있으나, 상위권 각 대학은 대학별 시험을 치러 알아서 학생을 뽑는다. 미국의 경우 우리의 수능 시험에 해당되는 SAT는 점수로 성적이 나오고 횟수 제한도 없다.

서울 모 대학의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가 내신도 등급제로 정하고, 논술 문제의 가이드라인도 만들고, 각 요소의 반영비율까지 간섭하는 현재 입시에서, 등급제 수능은 그 자체가 코미디”라며 “내년 3월에 구체적인 수능 실시 계획을 확정할 때, 성적 발표에 점수나 백분율도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월7일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 서울 대원여고 3학년 학생들이 교실에서 성적표를 받아 보았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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