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성진 법무장관이 법리상의 문제점을 들어 ‘삼성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으나 이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수용”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정치권의 삼성 특검법 드라이브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굉장히 문제가 많은 법”이라면서, 수사대상에 ‘당선축하금’이 포함된 데 대해 “의혹의 단서도 의문스러운데 하물며 수사의 단서로 삼겠다는 것은 대통령 흔들기”라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에 대해 “횡포” “(자신이 특검법과 함께 처리해달라고 요청한 공직비리수사처법안을) 처박아놓고”라는 격한 표현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그럼에도 수용키로 한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가 재의(再議)를 통해 그대로 확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 “(특검법을 수용하라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돌아가버렸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런 측면만을 감안한 것 같지는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선 폭로 당사자인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떡값’ 수준이 아니라 삼성그룹 전체가 관련된 비자금 조성 경위를 추가 폭로한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듯하다. 폭로 내용으로 봐서 특검을 거부할 수 없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정권 초 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인 이용철 변호사가 ‘떡값’ 500만원을 받았다가 돌려줬다고 폭로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 이 변호사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결국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게 되는 상황을 고려해 수용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측근들이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았을 가능성에 대해 “청와대 사람들은 전부 옛날부터 춥고 배고플 때 살던 사람들이라서 인맥이 별로 시원치 않다”면서 “적어도 삼성 하고 인맥 팍팍 뚫어놓고 거래해가면서 따뜻하게 비서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지난번(변양균·정윤재 사건 때) 큰소리 하다가 뭐 좀 구겨졌지만 또 구겨지더라도 그 점에 대해 우리 참모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간 특검법이 발의된 이후 위헌요소 등을 제시하며 거부권 검토 입장을 밝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