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삼성물산의 해외법인을 통해 장비를 사들일 때 장비 가격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200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26일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네 번째 기자회견을 갖고, “이렇게 마련된 비자금 중 최소 600억원이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62) 리움미술관장 등의 미술품 구입에 사용되는 등 이 회장의 개인 돈처럼 쓰여졌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특별수사·감찰본부(본부장 박한철 검사장)는 이와 관련, 삼성 관계자 등 8~9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했다. 출국금지 대상에는 이건희 회장과 아들 이재용 전무,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본부는 “김용철 변호사가 이날 제기한 추가 의혹도 수사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한철 본부장은 이날 “경제 분위기도 감안하느냐”는 질문에 “법과 원칙에 따를 뿐 수사외적인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홍라희 관장과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이재용 삼성그룹 전무의 장모 박현주씨,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부인 신연균씨 등이 2002~2003년에만 고가(高價)의 미술품 600여 억원어치를 구입했다”며, 미술품 구입 내용을 공개했다. 김 변호사는 또 “홍씨는 수시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구조본)에 연락해 미술품 구입대금을 지급하도록 했다”며 “미술품 구입에 사용된 돈은 모두 구조본 재무팀이 관리하는 비자금”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이건희 회장 가족 자산 중 상당 부분이 구조조정본부 등 삼성그룹 사장단 명의로 관리되고 있다”며, 10여 명의 사장단 이름을 거명했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이에 대해 “모두 다 사실무근으로, 비자금 조성은 전혀 없었다”며 “법적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또 “중앙일보의 삼성그룹 계열분리는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홍석현 회장 앞으로 명의 신탁한 위장분리”라며 “내가 1999년 비밀계약서를 직접 써줬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계열분리는 전 과정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감독과 승인 아래 합법적으로 진행됐다”며 “허위폭로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