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란 희생자들이 돌아본 IMF 이후 10년

조선일보
입력 2007.11.20 22:51 | 수정 2007.11.20 22:58

1997년 11월 21일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한다고 발표했다. 바닥난 외환보유고로 인한 국가 不渡부도 위기를 피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손을 벌린 것이다. 10월 말 218억달러였던 외환보유고는 11월 말 68억달러까지 줄어들어 당장 며칠을 버티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IMF의 긴급 자금 지원으로 한국은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큰 희생이 따랐다. 1998년 6월 사상 처음으로 동남·동화 등 5개 은행이 퇴출됐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안정된 직장인이었던 은행원들이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쫓겼다. 이때부터 시작된 구조조정으로 금융권에서만 15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현대·대우그룹 같은 대기업까지 무너지는 구조조정의 寒波한파 속에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평생 직장’으로 알고 회사에 들어 왔던 한국인에게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의 해고 통지는 단순히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家長가장의 失業실업은 가족 전체를 거센 濁流탁류 속으로 떠밀었다. 평생 서류만 만져 오던 화이트 칼라들은 익숙지 않은 공사판을 전전하며 하나 둘 사회에서 탈락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가족 자체가 붕괴됐다. 현재의 ‘新신빈곤층’ 안에는 이런 IMF시대의 생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대학 문을 나선 젊은이들에겐 ‘청년 白手백수’라는 낙오자의 낙인이 찍혔다. 고용 불안과 失業실업의 공포가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徘徊배회했다.

외환위기와 IMF체제가 한국 경제에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과 구조개혁의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30대 대기업 중 17개가 무너질 만큼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며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수익성은 한 단계 올라섰다. 資産자산 규모 세계 100위권에 드는 은행이 외환위기 전엔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은 4개다. 경상수지가 10년째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외환보유고가 2600억달러를 넘어 세계 4위를 기록하는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이런 발전과 개선의 뒤꼍에는 수십만명에 달하는 IMF 희생자들의 한숨과 눈물이 배어 있다.

한국은 IMF 지원자금을 2001년 8월 모두 갚아 당초 예정보다 빨리 IMF체제를 졸업했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여전히 기업 투자 위축에 따른 저성장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IMF체제는 아직도 現在進行型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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