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6일 ‘삼성 비자금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에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법’ 처리를 연계하고 나선 것은 사실상 특검을 하지 말자는 얘기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공수처법은 2004년 11월 국회에 제출돼 3년 동안 논란을 거듭해 왔을 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법안이다. 더욱이 대선을 32일 앞둔 시점에 정치권이 이 법안 처리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천호선 대변인 등 청와대 측이 이날 제시한 논리는 ▲공수처 설치 방안이 특검제의 정치적 폐해를 막아 보자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고 ▲공수처를 설치하면 다음 정권에서 특검 도입을 둘러싼 논란을 방지하면서도 고위공직자 부패에 대한 상시적 수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특검에 대해서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삼성 비자금 조성 및 수수의혹에 국한하는 방향으로 수사 대상을 축소해야 한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공수처 설치는 정말 필요하다고 대통령이 수십 차례 말해온 것”이라면서 “올해 연초 개헌 제안을 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 시점에 최대한 굳혀 놓고 가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청와대 측 논리일 뿐, 전체 상황에 비춰보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많다. 먼저 공수처법 처리 전망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15일까지만 해도 수사 대상 축소 조정을 요구하다가 16일 갑자기 공수처법 연계를 들고 나온 점이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다. 당초 수사 대상 축소 조정을 요구한 것도 특검을 저지하기 위한 것 아니었느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15일 신당 김효석 원내대표가 조정 검토 의사를 밝히자 곧바로 이 문제를 공수처법과 연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또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다른 법률 통과와 연계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점을 청와대 측이 모를 리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가에서는 청와대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특검을 막아야 할 만큼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특검이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것처럼 2002년 대선자금과 당선축하금 문제를 다룰 경우, 곧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수사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2003년 초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대북송금 특검을 받은 것처럼 노 대통령도 퇴임 이후 ‘삼성비자금 특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우리는 무엇을 해도 겁나는 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 비자금 특검 문제는 ‘떡값 로비 리스트’에서 거명된 검찰 간부 차원을 넘어 청와대와 정치권 전체가 얽힌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