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명품 건축물? 알고보니 불만투성이

조선일보
  • 이용재·건축평론가
    입력 2007.11.16 23:16 | 수정 2007.11.17 16:54

    MIT ‘스타타 센터’ 설계 오류로 손해배상 소송
    佛 거장의 ‘빌라 사보아’는 곳곳에서 빗물 뚝뚝
    美 스타 건축가의 ‘낙수장’은 물소리로 잠 못 자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가 이 학교의 새 명물 건축물로 손꼽히는 스타타 센터를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77)를 상대로 설계 오류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MIT는 지난달 말 보스턴 법원에 낸 소장에서 스타타 센터가 2004년 봄 완공되자마자 야외 계단식 원형극장이 배수 처리 문제로 균열을 보이는 등 설계 잘못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11월 7일 보도

    현대 건축의 시작이자 끝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 1965). 그는 1931년 파리 근교에 ‘빌라 사보아’를 완성해 세계 건축계를 평정했다. “주택은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는 코르뷔지에의 자신만만한 말이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건물에는 인류가 발명한 가장 값싼 방수 장치인 경사 지붕도, 석양을 막아주는 처마도 없다.

    건축이란 본디 외부 환경을 피해 안락한 집을 만들기 위한 것. 빛이나 물과의 전쟁은 숙명적인 것임에도 이 모든 것을 무시한 콘크리트 상자는 온 세계에 대량 복제돼 뿌려졌다.

    세계 건축계는 “완전히 새로운 예술”이라며 열광했다. 그런데 정작 집주인은 불만투성이였다. 곳곳에서 비가 샜고, 건강에 해로운 석양빛은 방 안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스타타 센터. /AP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미국의 스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1867~1959)는 193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밀런 근교에 ‘카프만’ 주택을 지었다. 집 안에 폭포를 끌어들인 이 건축은 ‘낙수장(Falling water)’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도 불린다. 라이트는 이렇게 생각했음 직하다. ‘코르뷔지에가 푸른 초원 위에 삶을 담는 기계를 만들었다고? 그럼 난 집 안으로 폭포를 끌어들이겠다. 누가 센가 보자.’

    집주인은 또 불만으로 가득 찼다. 하루 종일, 1년 내내 온 집안에서 ‘콸콸콸콸’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니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또 다른 유명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1906~2005)은 1959년 미국 코네티컷 주의 푸른 잔디밭 위에 철과 유리로 ‘글라스하우스’라는 것을 만들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투명한 건축이다. 어느 방향에서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고, 어디에서도 빛이 들어오는 건물을 지은 거다.

    집주인은 역시 불만투성이. 온 사방이 유리고 지붕은 철판이라 뜨거워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소용없었고, 한겨울이 되니 추워서 살 수가 없었다.
    비트라 소방서. /AP
    이라크 출신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57)도 여기서 빠질 수 없다. 하디드는 1993년 독일 바일 암 라인에 ‘비트라’ 소방서를 완공했다. 땅에 바로 선 수직선이나, 땅과 평평한 수평선이 하나도 없는 건축. 뾰족한 지붕은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틀어지고, 휘어지고, 비틀렸다. 하디드는 ‘이제 수직 수평선만으론 근대 건축의 거장들을 넘어설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집주인의 불만은 폭발했다. 온 방향의 벽과 바닥, 기둥이 휘어져 있는 까닭에 어지러워서 살 수가 없었다.

    우리 시대의 명품 공장장 프랭크 게리는 2004년 MIT에 ‘스타타 센터’를 완공했다. 입체를 독창적으로 해체한 감동적인 건축물이다. 하지만 게리의 이름을 떼고 보면 온통 삐뚤삐뚤한 것이 곧 쓰러질 것 같은 모양새다.

    스타타 센터를 연구실과 강의실 용도로 쓰고 있는 MIT는 건축가를 고소했다. 삐뚤삐뚤한 건물 마감 사이로는 비가 새고, 건물이 지어진 직후에는 여기저기 금이 잔뜩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부터 스타타 센터까지,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해결책은 단 하나뿐이다. ‘명품이니까 참고 살 것.’

    건축은 설치미술이 아니다. 맛있는 간장을 담그기 위해 항아리를 만들듯, 건축은 빈 삶의 공간을 담기 위한 껍데기를 만드는 거다. 그럼에도 건축가들은 항아리 겉모습 만들기에만 매진한다. 사람들은 원하는 겉모양을 손에 넣었기에 문제덩어리 건물이 됐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그럼 도대체 좋은 건축은 어떤 걸까. 비 안 새고, 바람 잘 통하고, 따뜻하고, 풍광이 좋은 건축이 좋은 건축이다. 요즘 시대에 한옥이 다시금 각광 받는 건 한옥의 부드러운 지붕 경사가 빗물을 잘 흘려 보내고, 뜨거운 태양열로부터 사람이 사는 공간을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아끼는 건축, 친환경적인 건축이 바로 한옥이다. 석양빛 막아주는 처마 쭉 빼내고, 창을 마주 보게 뚫어 환기 잘 되는 집. 이런 게 바로 인문학적인 건축이다.
    낙수장. /조선일보DB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애초에 계획했던 것에 비해 공사비가 14배로 뛰어 난리가 났었다. 이런 건축물이야 기념비적인 것이고 국가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이니까 껍데기에 돈 좀 써도 봐줄 수 있다. 튀는 건축을 원해서 튀는 건축가를 찾아갔으니, 건축주가 후유증이 있을 것임을 생각했어야 한다.

    한 건물에 경제성·편리성과 독창성·특이성을 함께 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MIT가 프랭크 게리를 찾아간 것은 튀는 건물을 갖고 싶어서였다. 명품 제작 전문가 게리에게 건물을 맡겼다면 공사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예술품’을 만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예술품을 만드는 데 예산에 제한을 두었으니 하자가 생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울 동대문운동장 재개발 현상안으로 자하 하디드의 ‘월드 디자인 플라자’가 당선됐다. 역시나 휘어지고 비틀어진 건축물이다. 바로 옆에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명품 건축물 동대문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시에서 처음 제시한 공사비는 2000억원. 애초에 당선된 현상안은 공사비가 2300억원 정도였는데, 당선되고 공사 도면을 잡자니 말이 바뀐다. 공사비가 3000억~4000억원까지 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튀는 디자인의 사진발에 시민들은 열광한다. 건축은 있는데, 사람은 살지 않는다. 그런데 명품 건축이라고 부른다. 이런 건축은 설치미술품으로 전락한다. 눈만 만족시키는 공허한 구조물이다. 튀지 않는 건축이 훨씬 살기 좋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겉이 번지르르한 명품에 열광한다.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문제투성이 건축은 계속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