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강타한 삼성그룹 비자금 폭로 의혹이 불거진 지 2주일이 지났다. 지난달 29일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전 법무팀장 김용철(49) 변호사가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의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 불법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이후 삼성 비자금 논란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특히 사제단이 "삼성그룹이 정기적으로 검사들에게 떡 값을 주며 관리를 했다"며 구체적으로 떡 값 검사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커지고 있다.

더구나 여야가 삼성 비자금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을 준비하면서 삼성비자금 논란은 더 확산될 전망이다.

◆김용철 “삼성 불법 비자금으로 전방위 로비”3차례 기자회견

사제단은 지난달 29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변호사가 ‘나도 모르게 내 명의로 개설된 은행 계좌에 50억원대 현금과 주식이 들어 있었으며, 이는 삼성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이라고 양심선언을 했다”고 밝힌 뒤 삼성의 불법 비자금의혹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했다.

사제단은 김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의혹 계좌의 물증으로 제시한 은행계좌 3개와 증권계좌 1개도 공개했다.

사제단은 “삼성은 계열사 사장단과 임원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사회 지도층들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로비 행각을 지속해 왔다”고 밝혔다.

지난 5일 2차 폭로 기자회견에는 김 변호사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김 변호사는 “현직 검찰 최고위급 간부들 중에서 삼성에게 ‘떡값’을 받은 사람들이 여럿 있다”며 “내가 검찰을 비롯해 법조계 수십 명을 관리하고 나머지는 관리사들이 관리했다”고 말했다. 또 “비자금 차명계좌를 가진 삼성임원들의 명단 일부를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김 변호사는 “모든 에버랜드 재판 관련 진술은 조작됐으며, 나도 그 일에 관여했다”면서 “이는 명백한 범죄다. 공범으로 나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주일 뒤인 지난 12일 사제단은 기자회견을 갖고 김 변호사의 증언을 통해 작성한 이른바 ‘떡값검사’명단의 일부를 공개했다.

거론된 ‘떡값검사’ 는 전직 검찰 고위간부 이종백 검사장,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이다.

김 변호사는 “삼성의 관리검사 명단을 보게 된 것은 지난 2001년 재무팀에 있을 때로 내가 주요 보직을 중심으로 이 명단을 직접 보완했다”며 “관리대상 명단은 삼성 본관 27층 재무팀 관재파트 상무 방에 벽으로 위장된 비밀금고 내에 보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 폭로의 핵심은 삼성 비자금과 에버랜드 불법 승계 조작

김 변호사 주장의 핵심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번째는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과 이 비자금을 이용한 정·관계 및 법조계, 언론로비 의혹이고, 둘째는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 불법행위 및 에버랜드 사건 증인 조작의혹이다. 김 변호사는 "2002년 제공된 대선자금도 바로 이 비자금에서 나온 것”이라고 폭로하고 있다. 김 변호사의 폭로가 맞을 경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후보에게 제공된 삼성그룹의 정치 자금도 모두 이 비자금에서 나왔다는 추정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에버랜드 불법 승계 과정에서의 범인 조작 여부이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에버랜드 재판의 경우 2심까지는 삼성측의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에버랜드에 대한 수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삼성측이 증인 조작 등을 통해 진짜 책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피고로 대신 내세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의혹의 정점에는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 김인주 전략기획팀장(사장)이 있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주장이다.

◆삼성,조목조목 반박…핵심은 비켜갔다?

삼성측은 지난 5일 김 변호사의 2차 기자회견을 계기로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정면대응에 나섰다. 추후 김 변호사에 대한 법적 대응 가능성도 내비쳤다.

삼성은 불법비자금 조성과 에버랜드 사건 조작 등 핵심의혹에 대해서 “전혀 근거가 없다”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법조계 로비의혹에 대해서도 “로비를 한 적도, 김변호사에게 로비를 지시한 바도 없다”며 “김 변호사가 법조계 등의 인사를 만나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했다면 이는 전적으로 김 변호사의 사적 관계에서 한 일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삼성측은 의혹제기 배경과 동기, 순수성 등 김 변호사의 개인적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일부 주장의 사실관계가 틀리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김 변호사 진술의 비일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이 핵심의혹은 비껴나가면서 김 변호사가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삼성그룹이 김변호사의 신뢰성 흠집내기에 주력하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은 “김 변호사가 공개한 계좌는 개인적인 거래관계 일뿐”이라고 일축했지만 삼성은 차명계좌를 만든 재무팀 임원이 누구인지, 왜 차명계좌를 통해 ‘재테크’를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또한 김 변호사가 사제단을 찾아가  ‘양심고백’을 한 뒤 왜 이학수 부회장이 직접 김 변호사를 찾아가고 “만나자. 전화통화라도 하자”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6차례나 보냈는지 정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삼성은 에버랜드 사건 조작의혹 및 이건희 회장의 불법승계 주도 의혹에 대해  “1,2심 재판에서 사실관계에 관한 다툼이 거의 없어 검찰의 주장대로 확정된 상태이며, 인정된 사실에 대한 법률적 해석과 판단에 대해서만 의견을 달리한다”며 “김 변호사의 사실관계 조작주장은 모순”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당시 재판부는 “삼성그룹 차원의 공모가 있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판단을 유보했다. 즉 이건희 회장의 지시여부 등은 검찰의 추가수사를 밝혀져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삼성측 해명이 아직 부족한 부분이다.

◆김변호사의 제기는 앙심인가 양심인가

김 변호사가 삼성 그룹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배경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김 변호사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폭로 동기도 순수하기 않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과 “중요한 것은 김 변호사의 도덕성이 아니라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의혹”이라는 사제단의 입장이 맞서는 형국이다.

삼성은 김 변호사의 의혹제기가  ‘양심선언을 통해 진실고백’이 아니라 ‘개인적 앙심에 의한 근거없는 허위폭로’라는 입장이다.

특히 삼성은 해명자료를 내면서 김변호사가 회사 재직시절 100억원 이상을 받았고, 퇴직후 3년간 고문변호사로 매월 2200만원씩 받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김 변호사의 ‘폭로’ 배경과 동기, 김 변호사의 주장의 비일관성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결국 김 변호사가‘삼성에게 더 이상 돈을 못 받게 되니 근거 없는 내용을 폭로한 것 아니냐’는 얘기인 셈이다. 삼성은 김 변호사의 전처가 삼성측에 보낸 편지의 일부까지 공개하며 사생활까지 드러냈다.

또한 최근 “김 변호사의 노래방 불법 운영 적발”등의 보도가 나오면서 김 변호사의 도덕성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김 변호사와 사제단측은 문제의 핵심을 살펴보자라는 입장이다. 김 변호사의 도덕성 논란도 제기될 수 있지만 사건의 핵심인 삼성의 불법비자금의혹에 주목해 달라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와 관련된 개인적 문제에 대한 비난이나 형사적 책임은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며 “하지만 삼성의 구조적인 비리와 내 개인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뒤숭숭한 검찰의 반응

사제단이 임채진 검찰총장 후보자를 포함한 전현직 고위 간부 3명을 ‘뇌물 검사’로 지목하면서 검찰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당초 검찰은 참여연대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삼성 비리 의혹을 고발하자 “ “떡값검사 명단을 먼저 제출해야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사제단과 참여연대 등은 검찰의 수사의지가 없다며 강력 비난한 뒤 “임채진 검찰총장 후보자 등 3명이 ‘뇌물검사’명단에 있다”고 폭로했다.

결국 검찰은 검찰총장 지휘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하는 ‘특별수사·감찰본부’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검사장급이 지휘하는 특별수사·감찰본부에서 현직 검찰총장을 뇌물 수수 혐의로 조사해야 하는 상황은 검찰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수지타산 계산에 한창인 여야

정치권에서는 ‘삼성 비자금특검법’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여야는 모두 특검 도입에는 찬성하지만 대선전략 등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3당은 지난 14일 ‘삼성 비자금 의혹 특별검사 법안’을 제출했다. 3당의 법안은 199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10년 동안의 삼성 비자금 조성 주체 및 사용처, 삼성그룹의 불법 상속 의혹을 특검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특검의 핵심은 삼성 비자금의 2002년 대선자금 사용 의혹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의혹 규명이라는 입장이다.

‘반부패’를 내세우는 범여권과 무소속 이회창 후보및 청와대를 겨냥한 한나라당의 입장이 엇갈린 것이다.

◆청와대의 이상한 반응

청와대는 15일 한나라당의 특검법에 대해서는 “유언비어 유포이며 악의적인 태도”라고 맹비난했다. 또한  3당의 특검법에 대해서도 “수사 대상이 광범위하고 현재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이유로 재검토를 요구해 사실상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16일에는 청 ‘삼성비자금 특검법’ 재검토를 거듭 촉구하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공직부패수사처 설치법(공수처법)이 함께 처리되지 않을 경우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가 삼성특검법 거부권 행사의 전제 조건으로 공수처법 통과를 내세운 것을 두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2004년 11월 국회에 제출된 공직부패수사처 설치를 골자로 하는 공수처법을 이번 국회에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축하금의혹”등을 제기하자 사실상 특검 반대를 위한 ‘핑계거리’를 내세운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민주노동당은 “청와대가 삼성에 장악됐다”고 비판했다.

◆여지 없이 나온 경제위기론

삼성과 재계는 ‘경제위기론’으로 수사에 대한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수사가 벌어지면 삼성의 경영에 차질이 오고, 결국 이는 한국 경제에 마이너스이다’는 논리가 반영된 것이다.

전경련과, 대한상의, 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경총 등 경제5단체는 16일 성명서를 내고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확산이 해당기업은 물론 경제와 사회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특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들은  “특정인의 일방적 주장에 따라 특검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기업과 국가경제 전반에 미칠 피해가 심각하다”면서 “또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특검을 도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삼성이 그 동안 잘 해왔는데 경영이 위축되는 게 아니냐고 (밖에서)우려한다”며 “반도체나 LCD 패널을 공급 받는 업체는 혹시 삼성전자의 제품 공급에는 차질이 없느냐며 걱정하는 질문을 많이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이)그렇게 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회사 다닐 때 (로비 등을)못하게 하는 것이 법무실에 있는 사람이 할 일임에도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회사를 곤경에 빠뜨려도 되는가”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나라경제를 망치는 것은 특검법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불법적인 떡값뇌물과 경영권세습, 비자금 조성”이라며 “반드시 특검법을 도입해 이건희 회장의 나라경제 파괴행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