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떡값 검사’ 명단이 일부 공개됐다. 특히 13일 인사청문회를 앞둔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까지 떡값 검사로 거론돼 검찰 안팎이 한동안 시끄러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 공개는 구체적인 근거가 없이 의혹만 제기된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떡값 제공 어떻게?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이날 발표대로 삼성그룹이 검사들에게 금품을 주는 상황을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변호사)은 2001년 재무팀에서 일하던 시절 삼성의 관리대상 검사 명단을 보게 됐다. 그는 이 명단을 주요 보직 중심으로 직접 보완했고, 명단은 삼성 본관 27층에 있는 비밀금고 속에 보관돼 있었다. 이 명단에는 대상 검사의 직책과 이름, 담당하는 삼성 그룹 임원 이름을 적는 빈칸이 있다. 돈을 전달하기 전에는 이 칸이 비어있는데, 전달하고 나면 채워지는 식이다. 금액은 적혀 있지 않지만, 보통이 500만원이었다고 한다. 이 명단에 임 내정자와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이 있다는 것이다.

12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 제기동 성당 기자회견에서‘JY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자료를 내보이고 있다. JY는 이재용 전무의 약칭이다. 삼성측은“이 자료는 비밀자료가 아니라 이미 검찰에 제출된 변론 자료”라고 밝혔다.


◆당사자들은 모두 부인

로비 대상 검사로 지목된 이들은 모두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반박했다. 임 내정자는 사제단이 자신을 관리하는 삼성 임원으로 지목한 이우희 전 에스원 사장에 대해 "고교 선배인 것은 맞지만 이 사장을 통해 어떤 청탁이나 금품도 받은 적이 없다"면서 "언제 어떻게 로비를 했다는 것인지 근거를 대라"고 했다.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과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도 "김 변호사와 식사조차 한 적이 없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이 전 사장과, 이 위원장의 관리 담당으로 지목된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도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펄쩍 뛰었다.

◆왜 이들만 공개했나?

김 변호사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서 떡값 검사가 40명이 넘는다고 밝혔는데, 왜 이들 3명만 공개했을까? 사제단은 검찰과 삼성의 뿌리깊은 유착관계를 알리기 위해 명단 일부를 공개한다고 했다. 다만 검찰 스스로 진실 규명의 본분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명단 전부가 아닌 일부를 공개한다고 했다.

법조계 인사들은 “최소한의 인원을 공개하면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둔 발표”라고 평했다. 검찰 최고위 간부를 거론해 국민과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앞으로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은근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들 ‘떡값 검사’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앞으로 검찰수사는?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오광수)로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사건 수사가 제대로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검찰 내부에서는 제대로 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수사하는 것 자체가 힘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 변호사가 자기가 직접 줬다고 진술한 것도 아니고, 누구를 통해서 주는 것으로 관리했다는 식의 말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사를 둘러싼 외부 상황도 좋지 않다. 이날 명단 공개 자체가 검찰조직에 대한 깊은 불신과 수사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일반 국민들을 납득시키기 어렵고, 음모론적인 해석이 난무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