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이 조명 빛에 반사됐다. 280㎜의 큰 발을 감싼 운동화를 신고 워킹 하듯 사뿐사뿐 걸어왔다. 패션쇼를 누빈 모델답게 173㎝의 키에 남자 손바닥 반 만한 작은 얼굴은 거의 10등신 비율이었다. 생각보다 어깨가 떡 벌어졌다. "하이~!" 옅고 푸른 눈빛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나긋나긋했다.

핫 핑크 색의 샤넬(Chanel) 핸드백이 눈에 띄었을 뿐, 스포츠 점퍼를 입어서인지 예상보다 수수해 보였다. 그런 그녀 모습에서 '스캔들 메이커'의 인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 힐튼가(家)의 상속녀이자 패션 모델인 패리스 힐튼(Paris Hilton·26)과 9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 룸에서 만나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7일 밤 입국한 그녀는 11일까지 4박5일간 한국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상속녀'로 유명한데, 부자란 걸 실감한 건 언제인가요.

"단 한번도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습니다. 부모님은 돈 많다고 티 내는 분이 절대 아니셨어요. 저 역시 16세부터 모델 활동을 하려고 뉴욕에 따로 나와 살며 돈을 벌었어요. '패리스 힐튼'이라는 토털 패션 브랜드를 만들었고, 영화에도 출연했고, 앨범도 냈죠.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패션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내년부터는 호텔 및 부동산 사업에도 뛰어듭니다. 사람들은 제가 돈을 쓰기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 제가 쓸 만큼은 벌고 있어요."

―얼마 전 브리트니 스피어스, 린제이 로한과 함께 차에 타고 있는 사진이 ‘창녀 대표회의(Bimbo Summit)’란 제목의 기사와 함께 보도됐습니다. 기분이 어땠나요.

“싸구려 미디어의 행동이 너무 집요해 숨을(hide)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러 피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 전 상냥하고(sweet), 여리면서도(sensitive), 성격도 좋은 사람(nice girl)이에요. 하지만 타블로이드지는 저를 ‘멍청이(dumb)’라고 하죠. 거짓으로 기사를 쓸 때도 있고. 다들 알겠지만 진실은 통하고, 현재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가고 있어요. 중요한 건, 그들이 뭐라든 전 신경 안 쓴다는 것이죠.”

―당신을 비꼬는 사람들은 당신이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She is famous for being famous)’이라고 하는데요.

“이해합니다. 내가 TV나 영화에 출연하기 전부터 난 이미 ‘힐튼 패밀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명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어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참 힘든 일이죠.”

9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열린‘패리스 힐튼 팬사인회’는 취재진과 팬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상속녀’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웠던 적은 없나요.

“난 대부분의 다른 상속녀처럼 얌전하게 집에서 보호 받으며 사는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다른 상속녀들이 안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같은 취급 하지 말아주세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사업가 외에 아픈 사람과 동물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또 얼마 뒤 아프리카 르완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할 예정인데, 이를 경험 삼아 특히 병들고 배고픈 아이들을 위한 자선 사업도 하고 싶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녀는 자청해서 한글로 사인을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기자가 종이에 한글로 힐튼의 이름을 써주자, 그녀는 글자를 보면서 사인지에 또박또박 선을 ‘그렸다’. 3분 만에 완성하더니 그녀는 말했다. “진짜 쉽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