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5월 퇴임하는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러시아 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터넷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러시아의 인터넷 사용인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한국이나 2004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보듯, 인터넷을 활용하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의 인터넷 시장은 가히 폭발적이라 부를 만하다. 2006년 말 TNS미디어와 갤럽이 조사한 러시아의 인터넷 사용인구는 전체 인구 1억4360만명 가운데 2370만명(16.5%). 2000년 말 334만명이었기 때문에 6년간 665%가 증가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더욱이 인터넷 이용인구가 16.5%라고는 하지만, 10대 미만과 60대 이상의 연령층을 제외하면 실제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 비율은 25%를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요즘은 70대 연령층에서도 “나도 네티즌이 됐다”며 자랑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모스크바 동쪽 노보기리예보에 거주하는 연금생활자 카리나 사포쥐니코바(71)씨는 “얼마 전 무선 인터넷 사업자인 골든 와이파이(Golden Wi-Fi)에 가입, 매월 900루블(약 3만6000원)을 지불하고 집에서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됐다”고 흐뭇해했다. 사포쥐니코바씨의 사례는 멈출 줄 모르고 성장하는 러시아 인터넷 시장의 단면이다.

러시아 인터넷 협회 루넷(Runet)은 지난 3월 현재 등록된 러시아의 도메인(domain·인터넷주소)은 .ru와 .su를 합쳐 63만9174개라고 밝혔다. ‘.su’ 도메인은 인터넷 혁명 초기인 1990년 9월 소련이 존재했을 때 부여된 것인데, 15개월 뒤인 1991년 12월 소련은 공식 소멸했다. 이후 러시아의 국가도메인은 ‘.ru’로 바뀌었다. 2000년에 15만개 정도였으므로 6년간 4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인터넷 인구가 늘다보니 영향력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지난 9월에는 과거 소련에 부여됐던 국가도메인 ‘.su’를 퇴출하려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의 방침에 네티즌들이 제동을 걸었다. ‘인터넷발전기금’ 대표 알렉세이 솔다토프(Soldatov)는 “’.su’에는 도메인 이름의 역사가 담겨 있고 올 들어 1500개의 신규 웹사이트가 이 도메인 사용 신청을 했다”며 “이 도메인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같은 인터넷의 ‘힘’은 언론매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가제타닷루(gazeta.ru)같은 인터넷 매체들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가 하면, 전통의 이즈베스티야나 코메르산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같은 신문들도 웹사이트를 운영해 기존 독자 외에 젊은 층의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퇴출 위기에 내몰렸던 거스 히딩크(Hiddink) 러시아 축구 대표팀 감독의 ‘생존’에는 인터넷 언론사 네티즌들의 힘이 많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2006년 말 러시아 대표팀이 유로2008 예선 초반 크로아티아와 약체 이스라엘에 비기자, 기존 러시아 언론들은 “히딩크 축구엔 더 이상 마법이 없다”며 혹평했고 감독 교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다수 의견은 ‘히딩크를 믿고 맡겨보자’는 것이었고, 결국 지난 10월 17일 잉글랜드를 격파하고 본선 진출을 눈앞에 둬 네티즌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2000년부터 연임을 하고 퇴임 후 차기 정부에서도 영향력을 이어가려는 푸틴 정부가 가만 놔둘 리 없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는 않지만, 그의 측근 인사들이 친(親)정부 성향의 인터넷 매체를 설립하거나 기존 매체를 인수하는 방식을 통해 ‘인터넷 힘 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친푸틴 인사인 금속산업 재벌 알리셰르 우스마노프(Usmanov)는 작년 12월 1위 인터넷 신문인 가제타닷루를 사들였다. 또 대통령행정실 부실장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Surkov)의 지원을 받았다고 소문이 도는 인터넷 신문 ‘브즈글랴트(관점·vz.ru)’는 설립한 지 불과 2년이지만 영향력 면에서 전체 뉴스 검색 사이트 5위권에 진입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정계와 언론계에선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집권 연장을 위해 인터넷 매체를 사들이고 검열까지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지난 10월 18일 자신의 재임기간 마지막이 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인터넷에 대한 검열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