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신경모, 넌 뭐야?” “난 골수백혈이야”

조선일보
  • 구홍회·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입력 2007.11.08 00:45 | 수정 2007.11.08 00:46

    수혈 땐 8자리 등록 번호 먼저 말하기도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19> 의학용어 줄줄 외는 소아암 환자들
    4~5살 또래 병실 아이들 엄마·의료진 말 따라해
    인형 눕혀놓고 주사·소독 놀이하듯 ‘병원 치료’ 적응

    어린이 암(癌)환자가 치료를 받는 병원의 소아암 병동. 약물과 링거액이 주사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4~5살 또래 아이들끼리 놀며 대화를 나눈다. “난, 신경모야, 다음엔 고(高)용량 할 거야, 넌 뭐야?” “난, 골수백혈이야, 근데 고용량이 뭐야?” “몰라, 엄마가 그거 해야 한대….” 여기서 ‘신경모’는 신경모세포종으로, 어린이에게 흔한 악성 종양이다. ‘골수백혈’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말한다. 소아암 아이들이 엄마와 의료진이 쓰는 말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만큼 소아암 환자들은 빠르게 병원 환경과 치료에 적응한다.

    간호사는 치료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마스크 쓰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면 처음엔 절대로 안 쓰던 아이들도 몇 주 지나면 마스크를 아주 잘 쓴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들도 마찬가지다. 회진 때 입안 상태를 보기 위해 불을 비추려 하면 마스크를 벗기도 전에 이미 ‘아~’ 하고 입을 벌린다. 수혈하려는 간호사에게는 어린이 환자가 ‘2048****, A플러스’라고 먼저 말한다. 자신의 환자 등록번호와 혈액형, ‘Rh 양성’이라는 말이다. 환자의 혈액형을 확인하려고 하면, 8자리나 되는 긴 등록번호를 엄마보다 아이들이 훨씬 잘 외워서 병실 안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투병 생활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겐 병원에서 하는 진단과 치료가 ‘놀이’가 되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집에서도 인형이나 엄마를 눕혀놓고 골수검사, 뇌척수액검사, 정맥주사, 중심정맥관(항암제 투여용 주사장치) 소독 등을 하며 놀기도 한다. 아이들 인형 엉덩이엔 거즈와 반창고가 항상 붙어 있다.

    소아암 어린이들은 치료 받으며 병을 이겨야 하고, 학업도 계속하며 성인으로 성장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요즘은 ‘병원 학교’가 있어 아이들은 병원에서 수업을 받게 될 경우 교육청에서 정식 수업을 받은 학생으로 인정받는다. 특히 대견스러운 것은 소아암과 싸워 이겨 완치된 후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다. 이들이 다시 찾아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소아암 환자는 우리나라 전체 암 환자의 1~2%이다. 소아암은 완치율이 75%선으로, 어른 암의 완치율 50%보다도 훨씬 높다. 최근 정부가 암환자의 치료비 지원을 강화해 환자 본인이 병원에 내는 치료비(건강보험 적용분만 해당)는 전체의 10%만 내면 된다. 하지만 아직도 소아암 치료에는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항목들이 많아 치료비 부담이 크다. 소아암 환자들의 부모는 나이가 젊어 큰 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적 문제로 이들이 소아암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저(低)소득층 환자를 위한 기부문화와 정부 지원이 활발해지도록 소망한다.

    구홍회·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신경모세포종=신경을 만드는 원시 세포에서 생기는 종양으로 주로 신생아의 신장 위쪽, 심장 위쪽, 척수 등에 잘 생긴다. 6000명 중 한 명꼴로 생기며, 주로 1~5세 사이에 발견된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백혈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혈액 암의 한 종류로, 비정상 백혈구가 골수 세포에서 갑자기 증식되어 다른 장기를 갉아 먹는다. 주로 20~30대에 많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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