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6일 대검에 제출한 고발장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의 혐의를 네 가지로 나눴다. 이들이 주장한 범죄 혐의는 불법 비자금 조성,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를 위한 불법 행위와 에버랜드 사건 조작, 불법 로비, 불법 계좌 개설 관련 의혹이다.

특히 불법 비자금 조성과 관련, 참여연대 등은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변호사)의 진술을 토대로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이 있는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27층에 비밀 금고가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 전략기획실 팀장인 김인주 사장 사무실 근처에 벽으로 가려진 비밀 금고가 있으며, 이곳에는 현금 뭉치와 각종 상품권이 쌓여 있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가 낸 고발장에 따르면 김 전 법무팀장은 직원들이 수시로 대형 가방에 든 현금을 이곳으로 옮기고, 이 비자금을 로비 담당자에게 지급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이들은 “삼성이 불법적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명의를 훔쳐 불법 계좌를 만들었으며, 비자금은 정부기관과 검찰, 언론 등을 상대로 한 로비 자금으로 쓰였다”고 주장했다.

두 단체는 또 이 회장 등이 삼성그룹 계열사에 손해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이 회장 아들 재용씨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 계열사와의 각종 유가증권 거래를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사건 성격상 대검찰청에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고발장을 받은 대검찰청의 김경수 홍보기획관은 “만약 수사 검사나 수사지휘 라인에 있는 검사가 삼성의 로비 대상 검사라면 수사의 공정성을 크게 의심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로비 대상 검사) 명단 공개 전에는 어느 검사에게 수사를 맡길지 결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법무팀장이 갖고 있다는 이른바 ‘떡값 검사’ 명단이 공개되기 전에는 수사에 착수할 수 없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검찰의 입장 표명은 정상명 검찰총장 등 수뇌부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당초 검찰은 고발장이 접수되는 대로 내용을 검토한 뒤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다는 입장이었다.

일부에서는 검찰의 이런 입장 표명을 불쾌감의 표시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으로 (검찰) 구성원 모두가 명예와 자긍심에 큰 손상을 입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또 여러 의혹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더 내놓으라는 김 전 법무팀장 압박용 카드라는 해석도 있다. 삼성 비자금과 경영권 승계 등 하나 하나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것인 데 비해 직접적인 증거 자료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발인인 참여연대는 “검찰 스스로 수사를 포기하고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치권도 로비 대상으로 지목된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특검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어 ‘삼성 비자금·로비 의혹’ 파문은 쉽게 가라앉기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