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신사임당은 억울하다

입력 2007.11.06 22:44

▲ 박선이 여성전문기자
신사임당을 5만원권 새 지폐 인물로 선정한 것을 놓고 일부 여성 운동가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신사임당이 가부장적 가치관에 기초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간판 인물이며, 현대 여성의 역할 모델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페미니스트 단체 대표는 “(신사임당 등장은)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후진국이라는 것을 세계에 공표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신사임당은 과연 21세기 한국에서, 그리고 알파 걸(모든 면에서 뛰어난 젊은 여성) 세상에서,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인물인가. 화폐 인물이 그 나라의 가치와 세계관,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담은 국가적 상징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고액권 화폐에 여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여성계 일부에서 지금 나오는 신사임당 반대 목소리는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구석이 많다.

먼저,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이며 가부장적 상징 인물이어서 안 된다는 주장은 여성주의(Feminism)의 미덕인 ‘전복적 상상력’에 얼마나 충실한 것인지 의문이다. 신사임당이 국가적 여성 위인으로 떠받들어진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다. 10월 유신을 정당화할 국민적 정신교육 소재가 필요했던 당시 정부는 국난 극복의 성웅(聖雄) 이순신과 짝을 이루는 ‘겨레의 어머니’로 신사임당을 내세웠다. 그의 고향인 강릉에 사임당 교육원을 세우고 전국에서 학도호국단 여학생 간부를 불러모아 정신교육을 시켰다.

실제의 신사임당은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의 현모양처가 아니었다. 우선, 그는 오늘날까지 작품과 이름을 남긴 몇 안 되는 여성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남편을 모시고 자녀를 키우느라 자신을 희생하지도 않았다. 그는 결혼 직후부터 십 수년을 친정에서 보냈고 남편이 있는 서울을 떠나 강원도 평창과 경기도 파주에 살며 예술작업을 평생 놓지 않았다. 남편이 헛되이 권력 주변을 맴돌 때 이를 말렸을 정도로 자기 주장이 확고하고 현철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선구적 페미니스트 베티 프리던(Friedan)이 제시했던, 아내와 어머니에 자신의 존재를 한정하기를 거부하는 여성 해방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겨레의 어머니’로 ‘가부장 사회의 현모양처’로 그에게 덧씌워진 잘못된 꾸밈을 벗겨주는 데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이 앞장서야 하는 것 아닐까. 20세기신사임당의 정치학은 여성을 남성의 보조자이며 세대를 잇는 모성으로 고정하는 가부장 권력의 산물이었다. 그는 헌신적인 아내로, 그리고 자녀 생산과 양육의 성공담으로 신화화되었고, 그 신화는 이번 한국은행의 인물선정 이유(자녀의 재능을 살린 교육적 성취)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신사임당은 억울할 것이다. 그를 시대와 맞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지켜낸 여성으로 재해석할 책무가 이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페미니즘에 있다. 이순신 장군이 박제된 성웅에서 역사의 격랑에 맞서 고뇌하는 한 인간 존재(김훈 소설 ‘칼의 노래’)로 진화해 온 지난 30년 동안, 신사임당은 가부장 여성 신화의 주인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책임의 한 조각은 페미니스트를 포함한 여성 지식인들도 나눠 가져야 한다.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현대 페미니즘의 눈으로 조선 중기의 신사임당을 들여다본다면, 오늘의 여성들이 성취해내는 자기 실현 파워의 실마리를 그에게서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21세기 여성의 역할 모델로 신사임당이 적합한지 아닌지는 그를 누구의 눈으로 보아내는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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