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변호사, 물증공개 왜 자꾸 미루나

  • 이데일리
    입력 2007.11.06 10:23

    차명계좌 거래내역·떡값 검사명단·이재용 관련 문건 등 공개 유보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前 삼성그룹 구조본 법무팀장)가 그동안 주장했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삼성그룹이 임원들 계좌를 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과 그 자금이 검찰과 국세청, 언론사 등 전방위적으로 살포됐다는 점,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5가지 물증을 언급했다. 그 중 자신의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들에 거액의 돈이 들어있다는 사실과 이건희 회장이 직접 로비방법을 지시한 내용이 담긴 내부 문건은 이미 공개했다.
    김 변호사는 그것 말고도 매년 수차례씩 검찰내 주요 검사들에게 돌린 이른바 '떡값'리스트도 갖고 있다고 했고, 이재용 전무의 불법적인 재산형성 과정을 담고 있는 내부문건도 있다고 했다. 삼성그룹에서 차명계좌로 활용하고 있는 임원들의 명단 일부도 갖고 있다고 했다.

    그 밖에도 많은 물증과 정황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제단의 모 신부가 '(그 증거자료들을 보고 난 후) 가슴이 벌렁벌렁 하고 잠이 안온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물증들 가운데 김 변호사가 '제대로' 공개한 것은 이건희 회장이 로비의 방법을 지시한 내용이 담긴 내부 문건 하나 뿐이다.

    ◇ '떡값' 용어부터 잘못됐다..맨 나중에 공개할 것

    언제라도 공개할 듯했던 이른바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은 5일 기자회견에서 맨 마지막에 공개하겠다고 못박아 버렸다.

    사제단은 뇌물을 '떡값'이라고 부르는 용어 선택도 잘못됐고 언론들이 비자금의 본질을 무시하고 '떡값 검사 명단'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돈 받은 검사들 리스트를 당분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가 뿌리 뽑겠다고 주장해 온 것이 삼성그룹과 검찰의 검은 연결고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검사 명단이 본질이 아니라는 설명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해결하는 키를 쥐고 있는 검찰을 강하게 압박할 경우 검찰 수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우려가 있고, 떡값 검사 명단이 공개되면 삼성그룹의 비자금 문제가 이슈에서 벗어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한 사제단 관계자가 "삼성의 검찰출신 법무팀장이 이런 이런 검사들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 걸 믿지 않고 또 다른 물증을 대라고 한다면 그건 수사를 안하겠다는 것이고 편파적인 것"이라고 말한 부분은 김변호사 측의 고민과 당혹감이 드러난 대목이다.

    ◇ 언제든지 확인해준다는 계좌 안 열어보는 이유는?

    비자금 계좌들 역시 계좌의 존재사실만 공개했을 뿐 계좌의 상세한 거래내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 측은 '보안계좌로 분류되어 있다는 이유로 계좌 내역이나 존재사실을 은행이 알려주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우리은행이나 굿모닝신한증권의 입장은 다르다.

    우리은행 준법감시단 관계자는 "씨크릿뱅킹의 경우 본인이 해당계좌를 개설한 지점에 가야만 조회·사용이 가능하다"면서 "김용철 변호사 본인이 삼성센터지점을 방문해 거래 내역을 조회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변호사의 주장대로 명의가 도용되고 시크릿뱅킹도 걸려있을 수 있지만 어찌됐건 본인이 직접 찾아오면 내역을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굿모닝신한증권 관계자는 "어느 지점을 방문하더라도 신분증을 제시하면 본인의 계좌 내역을 볼 수 있다"며 김 변호사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김 변호사의 이같은 행보에는 삼성그룹이 '삼성의 임원이 개인적으로 밖에서 가져와 굴리던 자금'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계좌 내역을 열어봐야 이를 뒤집을 반증이 나오기 어렵다는 고민도 담겨 있어 보인다.

    삼성그룹이 5일 반박자료를 통해 "해당 계좌에 대한 입출금 내역을 조사하면 (비자금 계좌가 아님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면서 조사 필요성을 제기한 부분도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김 변호사가 언제라도 내역을 열어볼 수 있는 계좌에 대한 삼성 측의 이같은 자신감과 오히려 이를 머뭇거리고 있는 듯한 김 변호사의 행동을 미뤄볼 때, 양쪽 모두 김 변호사 명의 계좌의 내역을 열어보는 정도로는 비자금 여부를 입증할 수 없다는 상황을 이미 파악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김 변호사 측이 "나도 모르는 돈이 들어있다는 계좌번호까지 공개했는데 뭐가 더 필요하냐"고 항변하는 부분도 이런 맥락과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해당은행에서 계좌개설 신청서를 요청해 조회하면 김 변호사의 동의하에 만든 계좌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반박할 수 있지만 김 변호사 측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 관련기사 : 분실했던 주민증이 삼성 비자금 논란 열쇠?

    ◇ 이재용 관련 문건도 공개 연기..검찰 수사 대비 수순?

    김 변호사는 또 이재용 전무의 재산형성과정을 담고 있는 삼성그룹 내부문건의 공개도 미뤘다. 5일 기자회견이 시작될 무렵까지도 사제단 관계자는 '기자회견 뒷부분에 공개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했으나 김 변호사가 기자회견 현장에서 '문건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추후공개'로 급선회했다.

    사제단 측은 인파가 많이 몰린 기자회견장의 사정상 문건이 분실 또는 훼손될 수 있는 소지가 있어 그랬다고 해명했지만, 문건의 복사본을 공개하는 것과 분실·훼손 우려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사제단의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제단 측이 '기자들에게 약속했으니 따로 발표할 것'이라고 한 만큼 조만간 이 문건을 공개하겠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공개시점을 미룬 김 변호사 측의 속사정과 의도는 오리무중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수사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고 있고 어느정도 여론 형성이 끝난 만큼 언론을 통한 폭로전을 자제하고 검찰 수사를 준비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김 변호사가 비자금 차명계좌를 갖고 있는 삼성그룹 임원 일부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공적기관에서 이를 공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에 대해 사제단 관계자는 "공적기관이라는 의미는 검찰 등이 수사를 시작하면 그 자료를 공개할 것이고 김 변호사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이데일리 - 1등 경제정보 멀티미디어 http://www.edaily.co.kr>

    - 당사의 기사를 사전 동의 없이 링크, 전재하거나 배포하실 수 없습니다 -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