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숙명여대 ‘춤추는 총장님’

입력 2007.10.26 23:33 | 수정 2007.10.27 23:56

[왜 그녀는] 이경숙 총장
이명박 후보 선대위원장 고사한…
직선 총장 4연임 14년째
“아직 학교에 할 일이 남아… 지도자는 말보다 실천이죠”

‘춤추는 총장님’은 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장 자리를 고사했을까. 이경숙(李慶淑) 숙명여대 총장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캠프의 선대위원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학교발전 기금모금 행사에서 거리낌 없이 테크노 댄스를 추어 보이고, 사립대 직선제 총장을 14년간 4 연임하는 보기 드문 여성 리더십으로 주목받았다. 한나라당이 선대위를 직능별 공동선대위원장 체제로 짜면서, ‘여성 몫’으로 이 총장이 거론됐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정작 지난 10일 경기도 안산에서 한나라당이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으로 가진 ‘국민성공시대 출정식’에 이 총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간, 이 총장은 숙명여대 캠퍼스에서 ‘50+기념행사’를 열고 있었다. 1957년 이전 숙명여대를 졸업한 노년의 동문 100여명을 초청한 이 행사는 6.25 전쟁 등 역사의 격랑 속에 졸업식도 제대로 못 치렀던 70대 이상 할머니들이 졸업 가운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즐거운 자리였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 총장은 이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때도 가깝게 지냈고, 신앙의 가치도 공유하고 있다. 이 후보가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 소망교회에 다니는데 그는 서초동 사랑의 교회에 출석한다. 공통분모가 누구보다 많을 것 같은 그가 선대위원장직을 고사한 데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 “학교 안에 벌여놓은 일이 많아 정치판에 갈 수가 없다”고 말하는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이명원기자 mwlee@chosun.com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내년 8월까지 총장 임기가 남았어요. 학교에 벌여놓은 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제게 지금 주어진 기업은 숙명여대밖에 없어요.”

숙명여대 행정관 6층의 총장 접견실은 소박했다. 커다란 갈색 소파 뒤로 벽을 가득 채운 진열장에는 숙명여대와 결연을 맺은 세계 여러 대학의 기념품이 전시되어 있다. 2002년 대학총장으로는 처음 받은 ‘올해의 최고 경영자’ 상패도 놓여 있다.

국제정치학자로 동북아 비교정치 연구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1981년 5공 출범 직후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그가 왜 이번에는 그처럼 적극적인 러브 콜에 응하지 않았을까. 한나라당 선대위원장(급)에는 전·현직 대학 총장이 3명이나 참가했고, 여야 합해 1000명은 족히 되는 교수들이 이번 대선 판에 뛰어들었다는데. 폴리페서(polifessor·정치 교수)에 대한 반감인지 물었다.
▲ 테크노댄서 총장. 모금 행사에서 파격적 춤을 선보였다. /조선일보DB

“그건 아닙니다. 교수님 한 분 한 분은 또 달라요.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여력 있어서 자문을 한다든지, 선진국 만드는데 보탬 될 게 있다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연갈색 투피스에 단발머리를 빗어 넘긴 그는 1시간 넘는 인터뷰 내내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아 올린 반듯한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그는 “지금 내 몫의 할 일은 학교 발전을 약속하며 내세웠던 계획을 단단하게 다져 놓고 가는 일”이라고 정리했다.

내년 8월이면 정년퇴직. 그는 1961년 숙명여대에 입학한 뒤 학생회장을 지냈고, 1976년 모교 교수로 돌아와 31년간 학교를 지켰다. 35년. 인생의 절반이 넘는 기간을 숙명여대에서 보낸 그는 “이곳에서 너무 많은 사랑을 원 없이 받았기 때문에 이곳에 저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94년, 총장이 되어 처음 전달받은 서류는 세금 7억여 원을 내라는 고지서였다. 그때 그는 숙명발전 기금 1000억 원 모금을 학교 안팎에 공표했다. 그때까지 모금 실적은 최고액이 2억 원이었다.

“어제 날짜로 1090억 원입니다. 약속을 지켰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도 눈물 젖은 100만원을 들고 온 동문들의 사랑 덕입니다.” 지난 13년간 그가 새로 지은 건물이 21개. 내년 이후 새로 지을 캠퍼스 규모가 건평만 2만여 평이다. “저야말로 토목·건축 총장이죠. 여성 인재를 키우기 위한 텃밭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 정말 섬기는 여성 리더들이 나올 겁니다.”

그는 2020년까지 한국에서 각 부문 리더십의 10%를 숙명여대에서 배출하겠다는 비전(vision)을 세웠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S-리더십’. 창조지식(spirit)과 미래형 기술(skill) 봉사적 성품(service) 건강한 심신(strength)의 영문 머릿자를 땄다.

선거가 1년 뒤였더라면, 혹은 정년이 1년만 빨랐더라면 그는 한나라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을까? 그는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면서도 “차기 정부는 국내의 갈등 해소와 통합의 문제가 가장 큰 과제”라고 주문했다.

“민주적 지도자는 국가의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고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국민들이 희망 속에 그것을 바라보고 갈 수 있게 해줘야 해요. 리더십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고 실천입니다.” 그는 “교육경쟁력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말하며 문득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꼭 좀 써달라”고 할 정도였다.

“최근 프랑스의 잃어버린 10년, 영국의 도약 10년은 바로 리더십이 근원이었습니다. 영국 블레어 총리는 교육 개혁에서 국가의 힘을 키웠어요.”

북한 정치, 북한 여성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그는 “대북 정책에서 우리의 ‘목표’가 뭔지 정확해야 한다”며 “북한의 개혁·개방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하고 있는 일이 뭔지,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물었다.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을 교내 총장실에서 만났다. /이명원 기자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