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쇼를 하라, 이제 좀 다른 쇼를”

입력 2007.10.26 22:40 | 수정 2007.10.26 22:44

▲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장
이명박 후보 부인의 에르메스 가방이 논란이 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송영길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건보료를 월 2만원(1998~2001년)도 안 냈으면서 비싼 가방을 들고 있다”는 요지로 이 후보 측을 비난했다.

이명박 후보의 ‘턱없이 낮은 건보료’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갑자기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송 의원이 ‘에르메스’라는 소품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명품 선호가 나날이 더해져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 같은 브랜드의 중요한 시장이 되고 있으면서도, 명품을 드는 사람을 비난하는 강도도 그만큼 센 나라가 우리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명품가방 드는 후보 부인’이라는 비난은 꽤나 ‘효율적’인 공격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논쟁을 보면, 언제까지 ‘있어 보인다는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이명박 후보 같은 재산가의 부인이라면 ‘에르메스’를 드는 게 죄는 아니다. 사위로부터의 선물이 아니라 자신이 사서 들어도 될 만한 처지다. 송 의원이 지적했듯, 이 후보가 건강보험료를 적게 냈다면 그의 의도적인 거짓말의 결과였는지, 건보료 운영체계의 결함에 따른 것이었는지, 정확히 확인해 그 책임을 후보 본인에게 물으면 그만이다. 역으로 그 부인이 1만원짜리 가방을 들었다 해서, 건보료를 적게 내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고 육영수 여사 이후 한국의 퍼스트 레이디는 ‘검박한 현모양처’여야 한다는 법칙이 언제나 존재해왔다. 육 여사는 많은 사람이 흠모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건 사실이지만, 세상이 변하면 기준도 변할 필요가 있다. 이 후보의 부인 같은 사람에게는 비싼 가방을 들었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그가 가진 자로서 어떤 사회적 기여를 해왔는지, 혹은 앞으로 할 것인지를 묻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옷 입는 데는 센스가 없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대통령 부인이 되고 난 뒤 센 존, 오스카 드 라렌타처럼 비싼 옷을 즐겨 입으며 오히려 더 화려해졌지만, 그건 그저 가십에 불과했다.

선거전에 나오는 후보들마다 ‘소탈함’ ‘인간미’ 같은 이미지로 승부를 벌이려는 것도 이제는 흘러간 노래를 지겹게 반복해서 듣는 것 같이 재미없다. 돌이켜보면, ‘인간미’를 가장한 것은 군부 세력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도 어린아이들과 사진을 자주 찍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어린이가 귀엣말을 하는 포스터를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이후 이건 아예 진부한 공식이 됐다.

후보의 부인들 역시 그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생전 시장을 찾지 않을 것 같은 후보 부인들도 선거 때만 되면, 새벽부터 시장 상인들을 찾아가 머리가 땅에 닿기 직전까지 인사를 하고, 목욕탕에 가서 동네 부인들 때를 밀어줬다. 남편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든, 국회의원에 나가든, 구 의원에 나가든 그녀들의 ‘모드’는 다 똑같다.

많은 사람들은 “쇼를 해라, 쇼를”이라고 비아냥거리지만, 그게 오랫동안 ‘공식’처럼 굳어진 것은 그게 나름의 효과가 있기 때문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소박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노무현 대통령의 ‘없는 자 콤플렉스’가 얼마나 국민을 걱정스럽게 했는지를 돌이켜 보면, ‘없는 것=선’이라는 공식은 유권자의 판단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다.

이제는 ‘쇼’의 버전이 달라질 때가 됐다. 있어도 없는 척, 안 그러면서도 소박한 척하는 게 ‘후보 호감’의 법칙으로 작용하는 한, 진정한 ‘정책 대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좋은 지도자는 ‘없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없는 척’ 하는 쇼는 이제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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