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바람의 딸, 한비야

입력 2007.10.26 22:31

▲ 김기철 출판팀장
몇 해 전, 터키 가파도키아에서 한 여대생을 만났습니다. 어깨에 배낭을 짊어지고 숙소에 들어서던 그는 꽤 지친 표정이었습니다. 혼자 터키를 가로질러 이란과 시리아까지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여자들의 활동에 제약이 많은 이슬람권인데다 우리와 미수교국인 시리아까지 다녀왔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태연했습니다. “뭘요? 비야 언니는 10년 전에 벌써 다녀왔는데요.”

1996년 첫 출간된 한비야(49)씨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총 4권)은 배낭족, 특히 젊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입니다. 어린 시절 결심한 세계 일주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배낭을 짊어진 채 오지를 답사한 그의 패기는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한씨의 인생도 이 여행기를 통해 바뀌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은 물론, 꿈에 그리던 국제 NGO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으로 일하게 됐으니까요.

한비야씨의 이름을 알린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 이번 주 푸른숲 출판사에서 다시 나왔습니다. 흘러간 얘기라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엔돌핀을 자극하는 내용이 수두룩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탈레반 병사를 사진 찍다가 총살당할 뻔하고, 케냐 숙소를 나서다 강도에게 목을 졸린 얘기도 그렇고, 시리아와 말라위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대목도 그렇습니다. 패키지 여행에서 겪을 수 없는 아슬아슬한 체험들이 한씨 특유의 직선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문체에 버무려져 “나도 한 번 도전해야 봐야지” 하는 의욕을 자극하더군요.

‘케냐 마사이족 아이들도 우리 아이이고, 이집트 민박집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이고, 투르크메니스탄 무채 파는 할머니도 우리 할머니라는 지구촌 한 가족 개념이 생겼다.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 되었다고 할까.’ 한씨는 오지 여행의 성과를 이렇게 들었습니다. ‘세상을 판단하는 잣대가 유연해졌다’고도 했습니다.

한씨는 지금 12월 말까지 진행되는 긴급구호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느라 짐바브웨에 머물고 있습니다. ‘바람의 딸…’ 첫 권엔 긴급구호팀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내다본 듯한 대목도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커피 한 잔으로 세 명을 살리고, 저녁 식사 한 끼로 50명의 아이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그의 뒤를 따라 수많은 한비야가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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