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금연 예산, 성인의 10분의1

조선일보
  • 이지혜 기자
    입력 2007.10.20 00:10

    담배에 찌든 아이들 <下> 청소년 금연 정책이 없다
    학교별 연간 지원금액 10만~15만원
    입시교육에 밀려 금연 지도 거의 못해
    담배 배우지 않도록 ‘예방 교육’에 중점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워 온 고모(18)군은 의사로부터 “폐 기능이 60대 노인과 다름없다”는 말을 들었다. 담배를 하루 평균 두 갑 이상 피워온 고군은 숨이 차서 3층 계단을 오르기도 버겁다. 숨이 턱 막혀 계단에서 주저앉기도 한다. 의사는 “선천적으로 폐가 약한데다, 만성적인 기관지염이 심해 심각한 합병증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군은 “이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군은 여전히 하루 한 갑 정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서너 달 끊어봤지만 결국 다시 피우게 됐죠. 완전히 끊는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청소년 흡연율이 다시 급증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청소년을 담배로부터 격리되도록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청소년들에게는 ‘금연’ 이상으로 ‘흡연 예방’ 프로그램이 중요하지만, 청소년 맞춤형 흡연 예방 프로그램은 없다시피 하다. 정부 지원도 극히 미미하다.

    정부에서 매년 금연 사업에 쓰는 예산은 300억원 가량. 이 가운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금연 사업에는 중앙정부 15억원, 지방자치단체 15억원씩 총 3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전국 1만여개 초·중·고교가 금연교육 명목으로 지원 받는 금액이 학교별로 연간 10만~15만원에 그친다. 금연 교육 전문가 1회 특강비로도 부족한 것이다.

    보건복지부 건강생활팀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금연 사업은 흡연율이 70%를 웃돌던 성인 남성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며 “교육부와 협의해 학교별 흡연 예방 교육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학교보건법은 보건교사가 주 6시간 이상의 건강교육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준수하는 학교는 많지 않다. 건강교육은 입시교육에 늘 밀리기 마련이고, 보건교사가 아예 없는 학교도 많기 때문이다. 서울 성수중학교 오정택 생활지도부장은 “현재 학교에는 지속적으로 금연을 돕거나 흡연을 예방하는 프로그램이 없다”며 “담배가 건강에 나쁘다는 비디오를 반복해서 틀어주는 수준이며 그런 교육방법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오 부장은 “학교 근처에도 담배를 파는 가게가 너무 많고, 24시간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금연 지도를 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 청소년 흡연 문제는 학교만의 책임이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을 위한 금연교육과 흡연예방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19일 오후 경기도의 한 주택가에서 남녀 고교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청소년흡연예방센터 이복근 소장도 “지금 담배 피우면 20년 후에 암에 걸린다는 식의 ‘1회성 겁주기’ 교육은 청소년들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건강에 관심을 많이 갖는 성인과는 달리 청소년들은 건강상의 위험을 먼 미래의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멋있다는 식의 광고에 현혹되지 않는 법, 담배를 피우라는 친구들의 권유를 거절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담배 광고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외국의 연구결과 중엔 담배를 피우는 이미지 광고만 보고도 청소년 27% 이상이 흡연 욕구를 느낀다는 보고서도 있다. 현행 법은 담배회사가 TV와 라디오, 신문을 통해 담배 제품을 광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TV나 영화에서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규제하는 법률은 없으며, 담배회사의 간접광고에 대해서도 별다른 규제가 없다. 이 소장은 “국내 담배회사가 전국 중·고교 농구대회를 주최하면서 청소년들에게까지 회사를 홍보하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금연보조제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어 담배를 끊기가 성인보다 훨씬 힘들다.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명승권 전문의는 “니코틴 패치나 금연껌, 그리고 최근 개발된 먹는 금연약품은 모두 청소년에 대한 임상시험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청소년에 대한 효과나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아 복용이 금지돼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 의사 처방을 통해서만 금연 보조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의학계에서는 청소년이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금연에 성공하는 비율을 5% 미만으로 보고 있다. 청소년기에는 아예 담배를 배우지 않도록 하는 흡연 예방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신촌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김영삼 교수는 “청소년기에 담배를 배우면 끊기도 훨씬 어렵고 40대쯤 폐암으로 조기 사망할 위험도 매우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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