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경찰서는 1일 전국을 무대로 국도와 지방도 교량에 설치된 교명판과 공사 설명판 수백 개를 훔친 김모(24)씨와 서모(23)씨 등 2명에 대해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교명판을 사들인 고물상 임모(64)씨를 긴급체포했다.
국도와 지방도에 있는 다리의 교명판(橋名板·다리 이름표)을 전문적으로 떼 팔아온 일당이 구속됐다. 김씨 일당은 지난달 28일 경북 영양군 입암면 입암1교에서 교량에 설치된 교명판과 교량의 재원 등이 적힌 공사 설명판을 떼어내는 등 지난 한 달 동안 영양군과 포항시 등 경북을 비롯해 경남, 전남 등 전국을 돌며 약 200여 곳의 교량에서 396개의 교명판과 공사 설명판(총 2450㎏), 시가 2억원어치를 팔아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훔친 교명판과 공사설명판은 다리에 붙어 있는 안내판이다. 국도나 지방도에 있는 교량에는 가로30㎝×세로 50㎝ 크기의 교명판 2개와 교량의 재원, 준공일시, 관리관청, 시공업체명 등이 적힌 가로60㎝×세로40㎝의 공사설명판 2개씩이 붙어 있다. 구리와 아연 합금인 황동으로 만들어진 이 판들은 무게가 각각 5~6㎏, 8~12㎏정도 된다. 교명판이나 공사설명판 제작 비용만 26만∼30만원선이며, 시설 비용까지 따지면 55만~69만원에 이른다. 김씨 일당의 범행으로 인한 피해액은 2억원이 넘는다.
김씨 일당은 렌터카를 이용해 주로 새벽 시간대에 움직였다. 국도나 지방도 등지의 인적이 드문 교량을 골랐다. 앞을 구부린 대형 드라이버와 정, 망치 등을 이용해 교명판 1개를 떼는데 걸리는 시간은 2분. 교량 1곳에 붙어 있는 교명판과 공사설명판 4개를 전부 훔치는데 10분이면 족했다. 하룻밤에 100개까지도 훔쳤다고 한다. 김씨 등은 경찰에서 “최근 새로 지어진 다리의 경우에는 볼트 등으로 견고하게 부착돼 있어 떼어내는 데 1개당 10분쯤 걸리지만, 2000년 이전에 지어진 낡은 교량들은 그저 드라이버만 꽂으면 금방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북 포항시에 있는 임씨의 고물상을 찾아 시가보다 싼 1개당 1만∼1만3000원 정도에 팔아넘겼다. 일반 고물상에서는 장물이어서 잘 매입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 알고 지내던 임씨에게 싼 가격에 팔아 온 것이다. 임씨는 매입한 교명판 등을 또 다른 고철업자에게 넘기려다가 경찰에 붙잡혀 모두 압수당했다.
2억원이 넘는 교명판과 공사 설명판을 뜯어낸 김씨 일당이 정작 손에 쥔 돈은 530만원. 여자친구들과 어울려 여관에서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시골 교량의 교명판과 공사설명판이 절도범들의 표적이 된 이유는 뭘까? 구리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철은 1㎏당 120∼200원 수준인데, 구리가 들어가 있는 황동의 경우 많게는 30배 가량 비싸다. 특히 교명판·공사 설명판 등은 부피가 작고, 무게는 많이 나가기 때문에 최고의 고철로 꼽힌다는 것이 고철수집상들의 얘기다.
교명판에 쓰이는 황동은 신주(10원짜리 동전 만드는 원료)라고 불리며 최근 시세로 1㎏당 3500∼4000원 정도다. 순 구리(6000~7000원) 다음으로 비싸다. 대구 그린자원 석영균(50) 대표는 “지난 2005년 1㎏당 2000원 하던 A급 구리가 최근 7000원을 호가하고 있다”면서 “구리를 포함해 구리가격의 50∼60%정도인 황동도 요즘은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렇게 모인 황동은 고철재생업체로 넘어간다. 교명판 등을 녹인 뒤 소화전 밸브, 수도꼭지 등의 원료로 다시 쓰인다.
건설교통부는 교명판 절도사건이 끊이질 않자 지난해 ‘교량 교명 및 설명판 보전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새로 볼트로 조이고 용접하기 위해서는 다리 1개당 보통 1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지자체들은 예산상의 이유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가 도난 피해를 입었다. 이번 사건으로 교명판 21개와 공사설명판 28개를 도난당한 영양군청은 “경찰 압수품에서 80%정도를 되찾아 볼트 등으로 견고하게 부착할 계획이며, 새로 건설하는 교량은 모두 대리석으로 명판과 공사설명판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