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미국으로 출국해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기자들과 맞닥뜨렸을 때 “나는 예일대 박사가 맞다”며 당당하게 말하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에서 도피성 체류를 해온 신정아(35)씨가 16일 오후 5시9분쯤 일본항공(JAL)953편을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가짜 학위 파문으로 출국한 지 정확하게 2개월(62일) 만이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베이지색 점퍼 차림으로 비행기에서 내린 신씨를 입국 수속도 하기 전에 맞은 것은 검찰 수사관들이었다. 신씨는 옅은 화장을 했지만 도피생활에 시달린 듯 얼굴이 초췌해 보였다.

◆초췌한 표정… 다리 풀려 주저앉기도

수사관들이 체포영장을 제시하자 신씨는 놀란 듯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검찰은 신씨가 출석 요구에 불응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귀국 현장에서 연행했다. 귀국 전 미국에서 가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던 신씨는 입국 후엔 작심한 듯 말을 아꼈다.

▲ 16일 오후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직후 검찰에 체포된 신정아씨가 호송차 안에서 검찰 직원의 부축을 받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수사관들에게 팔짱을 끼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입국 게이트로 들어선 신씨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물의를 빚어 죄송합니다”라고 한 뒤 입을 굳게 닫았다. 변양균(58)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관계나 누드사진 등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선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신씨는 공항 출구로 이동하는 내내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때론 카메라를 피하려고 수사관들 뒤로 얼굴을 숨기기도 했다. 한때는 다리가 풀린 듯 휘청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검찰에서 준비한 승합차로 향하던 중 공항 출구 앞에서는 잠시 주저앉았다. 입국 심사 과정에서 신씨의 여권을 찾지 못해 잠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씨를 연행해온 검찰 관계자가 입국 심사장 직원에게 먼저 신씨의 얼굴을 확인시킨 뒤 나중에 여권을 보내주기로 하고 입국장을 통과했다.

이날 공항엔 1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려들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또 신씨가 취재진에 둘러싸여 지나갈 때면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신정아다”라고 소리치며 휴대전화 카메라로 신씨를 촬영하기도 했다. 신씨는 오후 5시56분쯤 수사관들과 함께 승합차 뒷자리에 올라타고 서울 서부지검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구토를 하는 등 힘든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후 6시38분쯤 서울 서부지검에 도착한 신씨는 “갑자기 귀국한 이유가 뭐냐”, “변 전 실장과 어떤 관계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 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현관 계단에서 다시 한 번 힘없이 쭈그리고 앉았다가 일어난 뒤 변 전 실장이 조사를 받고 있는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변 전 실장과 다른 방에서 조사받아

이에 앞서 신씨는 오후 2시40분쯤 선글라스를 낀 채 일본 나리타 공항에 나타났고, 그를 발견하고 질문을 던진 취재진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검찰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만 말하고 인천공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날 오후 6시쯤에는 신씨의 법률 상담을 위해 지난 14일 일본으로 출국했던 박종록 변호사가 아시아나항공 OZ103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박 변호사는 “신씨가 검찰 수사를 통해 자신의 (예일대 박사) 학위에 대한 진위 여부를 가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신씨도 자신이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씨의 전격 귀국에 대해 박 변호사는 “본인의 판단일 뿐 변 전 실장 등과의 사전조율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변 전 실장과의 관계에 대해선 “법률적인 부분만 상담했을 뿐 사적인 부분은 전혀 묻지 않아 모른다”고 말했다. 신씨는 변 전 실장과 다른 방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