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뉴스를 구입해 직접 편집·배치하면서 언론 역할을 한다. 언론사 뉴스 외의 콘텐츠도 포털 이용자들에게 불법 복제를 유도해 자사 사이트로 끌어들인다. 그런 과정에서 포털은 콘텐츠 집산지로서 더욱 독점화되고, 콘텐츠 생산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포털에 콘텐츠 권리를 넘겨주는 상황에 도달했다.”

11일 6개 인터넷언론 및 콘텐츠 단체가 ‘뉴스·콘텐츠 저작권자 협의회(뉴콘협)’를 결성하면서 내놓은 진단이다. 조선닷컴을 비롯해 신문사닷컴을 대표하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 등 성향이 다른 6개 단체 소속의 무려 240여개나 되는 매체가 ‘뉴콘협’이라는 협의체를 구성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포털의 횡포’가 매체별 개별 대응으로는 극복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콘협 관계자는 “신문사나 인터넷 콘텐츠 생산자들의 존속자체가 힘들 지경까지 몰아붙이는 ‘포털’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가 동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목 변경

지난달 31일 일간스포츠는 ‘이천수 당분간 한국에서 사인해드리기 어렵다’는 제목의 기사를 포털에 제공했다. 그러자 ‘다음’은 이를 ‘이천수 긴급출국 여권발급 대기중’으로 변경해서 내보냈다. 기사 본문은 물론 해당 신문사에서 편집자, 편집데스크, 편집국장 등의 동의를 거친 기사 제목을 ‘콘텐츠 유통업자’라는 포털이 편의에 따라 일방적으로 바꾼 것이다.

지난해 9월 12일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주요 현안이었던 저작권법 강화에 대해 경향신문은 ‘한미FTA 방송·통신·인터넷 개방 비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대해 네이버는 뉴스화면에서 이를 메인뉴스로 뽑으면서 ‘한미FTA 체결되면 네티즌 줄소송 당할 수도’라는 제목으로 뽑아냈다.

빅뉴스 변희재 대표는 “주요 포털에 퍼져 있는 ‘불법복제 콘텐츠’가 주요 현안으로 부각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해 이를 ‘네티즌이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식으로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것으로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제목변경은 예외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올 1월 2일부터 5일까지 네이버의 홈페이지에 나오는 뉴스박스를 분석한 결과 59.7%가 네이버에서 제목을 자체 수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복제와 무단 DB저장

주요 포털에는 언론사에서 제공받은 기사에 ‘스크랩하기’, ‘블로그 보내기’, ‘이메일 보내기’ 등과 같은 무단 복제와 배포를 조장하는 서비스가 제공된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네티즌의 불법복제를 조장하는 시스템은 한국의 콘텐츠 시장 기반 자체를 허물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내현 인터넷콘텐츠협회 상임부회장은 “며칠을 공들여 만든 동영상 등 콘텐트가 단 몇 분 만에 포털의 블로그나 카페에 그대로 복제돼서 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콘텐츠 생산자는 자사 사이트 방문을 늘리기 위해 콘텐츠를 만들지만 재미있고 의미있는 콘텐츠의 거의 100%가 포털로 퍼옮겨지고, 결국 포털의 방문자만 늘려주는 들러리가 되고 만다”면서 “창업을 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의지 자체를 꺾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뉴콘협’ 발족식에서는 무단으로 콘텐츠 생산자의 콘텐츠를 포털이 데이터베이스(DB)화해서 관리하는 것도 집중 거론됐다.

한기봉 온라인신문협회장은 “거대 포털과 군소 미디어 업체 간에는 제공키로 한 콘텐츠의 저장기간에 대한 명쾌한 약정조차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심지어 신문사의 기사인 경우 6개월이 지나면 포털에서 삭제해야 하지만 아직도 90년대 후반에 생산된 대부분의 뉴스 콘텐츠를 검색할 수 있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또한 언론사 닷컴의 기능을 고사시키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뉴콘협은 밝혔다.

◆부정확한 정보 확대 재생산,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전 의원, 말을 그리 함부로 하나.”

2005년 3월 8일 저녁 7시쯤, 네이버는 분야별 주요 뉴스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한 발언을 제목으로 뽑은 기사를 올렸다. 그러나 사실은 당시 열린우리당 김현미 전 대변인에게 불만을 표시한 것이 ‘노컷뉴스’가 이를 전여옥 의원에게 한 것으로 기사를 잘못 작성한 것이었다. 해당 기자는 50분 뒤 이름을 고친 기사를 전송했지만, 결국 네이버에 걸린 기사 제목은 같은 날 9시30분에야 고쳐졌다.

2005년 A씨의 여자친구가 자살했다. A씨의 배신 때문이라는 여자친구 가족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공개되자 격앙된 네티즌들의 ‘악플’이 줄을 이었고, A씨의 신상정보는 낱낱이 공개됐다. 포털은 네티즌의 비난성 댓글을 그대로 방치해 A씨는 더 이상 사회생활이 어려울 지경에 처했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포털은 “우리 책임은 없다”고 버텼다. 하지만 법원은 포털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뉴콘협은 이날 “(포털의) 부정확한 정보의 확대 재생산, 또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등 다양한 형태로 그 폐해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바로잡기 위한 공론의 장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온라인신문협회 관계자는 “일반 언론사는 차장, 부장, 국장 등 다양한 단계를 통해 ‘게이트 키핑’이 이뤄지는 반면, 언론사에 비해 전파력이 훨씬 큰 포털의 경우 제대로 된 게이트 키핑 기능이 약해 신뢰성 없는 기사를 퍼뜨려 개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뉴콘협의 문제 제기에 대해 “콘텐츠 공급계약은 개별 언론사와 협의하는 만큼 협회 차원의 문제제기에 대해 입장을 내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