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섬나라’ 투발루에 가보다

입력 2007.09.07 23:21 | 수정 2007.09.08 17:39

온난화로 100년내 물에 잠긴다는 남태평양의 산호 군도
수도 푸나푸티 면적 2.8㎢에 길이 12㎞ 폭은 제일 넓은 곳이 600m…
제일 높은 건물 3층짜리 정부 청사 각국서 호텔·가로등·도로 무상 지원

착륙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도착할 공항의 코드는 FUN(푸나푸티).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Fun)’ 코드다. 남태평양에 있는 나라 피지의 수도인 수바 인근의 나우소리 공항을 떠나 북쪽으로 날아온 지 2시간20분.

손바닥만한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고 내려다봤다. 긴 뱀 한 마리가 물 위에 떠 있는 모양이다.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다. 투발루는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7m. 환경학자들이 지금처럼 지구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100년 안에 가라앉고 말 것이라고 수시로 이름을 들먹이는 나라다.

산이나 동산처럼 튀어나온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한쪽에서 몰아치는 거센 파도가 금방이라도 길기만 한 섬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뱀’의 등 쪽으로 막대기 같이 네모난 활주로가 보였다. 51년 된 비행기 ‘콘베어 580’이 과연 제대로 착륙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비행기는 다행히 활주로를 벗어나진 않았다. 방향을 돌린 비행기는 활주로 중간에 있는 공항 청사에 멈췄다.

함께 내린 탑승객은 18명. 순수한 관광객은 단 1명이었다. 영국에서 온 해리 에흐트(Echt·36)씨. 7년째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책으로 낼 예정이라는 에흐트씨는 “투발루가 내 여행의 종착역”이라며 “흙 속에 묻힌 진주일 것 같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아껴뒀던 곳”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피지에서 온 사업가들과 방송취재진, 해외에 돈 벌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투발루 사람들이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그래 봐야 10m 나왔을 뿐이지만…. 비행기가 내리고 뜨는 날은 청사 앞은 북새통이 된다. 자세히 보니 배웅이나 마중하러 나온 사람은 3분의1도 안 되는 듯했다. 다른 이들은 그냥 구경 나온 사람들이다. 투발루에 단 1개뿐이라는 호텔을 찾아야 했다. 호텔이라고 적힌 트럭을 발견했다. 그런데, 짐을 실어준 직원은 기자보고 호텔까지 걸어가란다. 아니, 손님보고 걸어가라니…. 그의 손가락 끝 방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60m도 되지 않는 거리에 호텔이 있었다.

바이아쿠 라기 호텔. 객실 16개로 정부가 운영한다. 방 크기는 다 똑같지만 투숙객 수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혼자 사용하면 아침식사 포함 95달러다. 호텔 프론트에서 ‘도대체 전화는 왜 안 받고, 메일은 번번이 반송이 된 거냐’고 따졌다. 한국을 떠나기 전 일주일 동안 ‘문화인’답게 예약하려다 복장 터졌던 일이 생각나 또다시 부아가 났던 까닭이다. 대답은 간단했다. 한 달 전쯤 송신탑에 벼락이 떨어져 통신시설이 엉망이 됐단다. 아직도 복구중이라고 했다. 그럼 메일은? 호텔 프론트 직원의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원래 잘 안 돼요.”


투발루 전체 면적은 25.9㎢. 여의도 면적(8.4㎢)의 3배 정도다. 9개의 섬이 동경 176~180도, 남위 5~11도 사이에 퍼져 있다. 덕분에 투발루의 바다면적은 90만㎢나 된다. 이 넓은 바다는 자원이 풍부해서 투발루는 조업권을 팔아 연간 7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바다가 넓어 돈이 되기도 하지만, 섬 사이를 오가는 데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다른 섬까지 다니는 비행기는 한 대도 없다. 정부가 소유한 달랑 2대의 화물여객선 ‘니바가2(Nivaga Ⅱ)’호와 ‘마누 폴라우(Manu Folau)’호가 가끔 오갈 뿐이다. 정부 소유의 배는 이들 배 2척과 경찰 순시선 1척이 전부다. 남쪽 니울라키타섬까지 가는데 사흘, 북쪽 나누메아섬까지는 꼬박 나흘이 걸린다. 그나마 날씨에 따라 변동이 심해 부정기 운행을 한다.

수도 푸나푸티의 면적은 2.8㎢. 투발루 전체 인구 1만명 가운데 47% 정도인 4700여명이 모여 산다. 그야말로 인구 과밀이다. 길이 12㎞에 폭이 제일 넓은 곳이 600여m, 좁은 곳은 겨우 6m 남짓이다. “좁은 곳이니 택시 탈 일은 없겠다” 싶어 걸어다녔다. 하지만 30도가 넘는 날씨에 같은 길을 계속 오간다는 건 ‘극기훈련’과 한가지였다.

땀을 뻘뻘 흘리는 이방인을 보다 못한 호텔 직원은 “어지간하면 ‘모터사이클’을 빌려서 타고 다니라”고 충고했다. 모터사이클 수리점이 렌탈서비스도 하고 있었다. 직원이 타고 온 모터사이클은 대림에서 나온 50cc 모델이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나중에 보니 스포티지 자동차도 있었고, 다른 한국산 모터사이클도 여럿 보였다. 한국이 무상으로 투발루에 기증했던 것들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이지만, 그 속엔 이미 ‘KOREA’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투발루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2004년 새로 만든 정부종합청사다. 그래 봤자 3층이다. 중국과의 문제 때문에 수교국이 많지 않은 대만은 투발루와 수교를 맺은 기념으로 800만 달러를 들여 청사를 지어줬다. 청사 바로 옆에 있는 유일한 호텔도 대만 정부가 기증한 것이다. 병원은 1개 있다. 의사는 6명. 정부에서 돈을 주고 필리핀이나 터키 등 고용한 외국인들이다.

투발루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일’에 선수다. 사실 혼자 코 풀 능력도 별로 없다. 노란 불이 들어오는 도심의 가로등은 뉴질랜드가 1990년에 만들어줬다. 도로포장은 1991년 미국의 몫이었다. 미국은 도로 곳곳에 ‘누워있는 경찰관’이라고 불리는 과속방지턱을 무지막지하게 설치했다. 공항 활주로는 1992년 유럽연합이 새로 포장을 해줬고, 공항 신청사도 1993년 호주가 지어줬다.

공항에서 남쪽으로 3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카바토에토에(Kavatoetoe)’ 마을. 버려진 모터사이클 타이어와 자전거 휠을 굴리며 놀고 있던 아이들이 이방인을 보고는 모여 들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난리다. 12가구가 모여 사는 저지대다. 서울에선 달동네가 빈민촌이라면, 푸나푸티에서는 저지대가 없는 자들의 안식처다. 저지대라고 해봐야, 다른 지역보다 1m 정도 낮다. 게다가 대부분 집 밑바닥에 1m정도 되는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이 밀물 때 느끼는 공포는 사뭇 다르다.

밀물때마다 침수 피해를 입는 투발루./ 투발루 기상청 제공

2001년 세계 300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한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가 보고서를 냈다. 과학자들은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평균 5.5㎜씩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다”고 했다. 국토의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7m인 투발루는 이르면 50년, 늦어도 100년 후면 가라앉고 만다는 경고가 나왔다.

동쪽 해안에 바로 붙어 있는 집. 중년의 후덕한 모습인 알라이네 바카밀로(45)씨는 “해마다 2월이면 집이 온통 물에 잠기는 물난리를 겪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으로 치면 ‘백중사리’와 비슷한 2월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는 얘기다. 가장 피해가 컸던 때는 지난해 2월말.

“새벽 4시쯤이었어요. 잠을 자는데 갑자기 물소리가 들리더니 집 뒤쪽에서 바닷물이 넘쳐 들어왔죠. 마당은 물론이고, 방 위로도 20㎝ 정도 물이 차올랐어요. 돼지들이 둥둥 떠다니고, 10살 난 막내아들은 무서워서 계속 울고….”

남편 카이사미 바카밀로(43)씨는 “기회가 된다면 우리 아이들만은 물에 잠길 걱정이 없는 외국에 가서 살게 하고 싶다”고 했다.

활주로에서 공항청사와 마주 보고 있는 투발루 기상청을 찾았다. 기상청 로비에는 그동안 바닷물 범람으로 피해를 입은 투발루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기상청 앞마당이 잠긴 모습도 담겨 있다. 투발루 기상청 홈페이지에도 “도대체 누가 해수면 상승이 없다고 말하는가”라는 글과 함께 사진이 올라 있다.

기상청 직원은 모두 16명. 힐리아 바바에 기상청장은 2년째 뉴질랜드에서 유학중이다. 대신 타발라 카테아(33) 부청장이 직무대행으로 일을 하고 있다. 카테아 부청장은 “지금 같은 해수면 상승이 계속된다면 투발루는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1990년 이후 연 강수량이 3000㎜이던 지역에 한 달 넘게 가뭄이 발생하고, 전에 없던 사이클론(Cyclone·남태평양에서 부는 태풍)이 불어닥치는 등 기상 재해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만조와 사이클론 겹치게 된다면 투발루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정작 투발루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관료들은 하나같이 투발루가 지구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고 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푸나푸티의 카우풀레(Kaupule)카운티 책임자인 아피넬루 틸리(48)씨가 답을 내놓았다.

“우리 투발루 사람들은 99%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입니다. 창세기 9장15절에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찌라’라는 구절이 있지요. 대부분 투발루인들은 노아의 방주 사건 이후 다시는 물의 심판이 없을 것이라는 언약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겁니다.”

투발루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파타나(Patana)라는 열대 식물 열매를 먹는다. 정확히 말하면 갉아먹는다. 양치질 대용이다. 치솔처럼 질긴 섬유질을 계속 갉아먹으며 이를 닦아낸다. 직접 해보니 양치질 ‘저리 가라’다. 물도 아끼고 건강도 지키는 투발루 선조들의 지혜다.

시내를 둘러보니 집이나 건물 옆에는 여지없이 둥그런 대형 탱크가 한두 개씩 붙어 있었다. 물탱크였다.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이 홈통을 타고 이 안으로 흘러가게 돼 있다. 툭하면 물속에 잠기는 나라지만, 정작 필요한 물은 부족한 나라다. 푸나푸티엔 시냇물이나 강이 없다. 그래서 1년에 3000㎜ 정도 내리는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로 쓴다. 최근 기후 변화로 가뭄이 계속되면서 물 부족에 시달렸으나, 일본에서 해수담수화(海水淡水化) 설비를 기증해 그나마 갈증을 달래고 있다.

밀물때마다 침수 피해를 입는 투발루./투발루 기상청 제공

북쪽에는 빈민촌이 있었다. 대부분 다른 섬에서 옮겨온 빈민들이 모여 산다. 이들이 사는 집은 쓰레기로 가득 찬 구덩이 근처에 있다. 투발루인들은 이 구덩이들을 ‘바로 피츠(borrow pits·빌린 구덩이들)’라고 불렀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과 싸우던 미군들이 1943년 활주로를 건설하고 진지를 만들면서 모래와 흙을 퍼낸 구덩이다. 섬 곳곳에 이런 ‘바로 피츠’가 있다. 밀물 때마다 물이 차오른다. 몇몇 곳은 쓰레기 하치장으로 쓰인다. 벌거벗은 빈민촌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적이며 ‘쓸만한’ 물건들을 찾고 있었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외국인을 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이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밀물이 되자 구덩이에 있던 쓰레기들이 땅밑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바닷물과 뒤섞여 빈민들이 사는 집으로 밀려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공동묘지였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우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장례식이 끝난 뒤 무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모두 활짝 웃으면서…. 한 여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좋은 곳으로 가셨는데, 왜 울어요?”

나라가 물에 잠기게 될 것을 믿지도 않고,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푸나푸티의 경찰관은 25명. 경찰서는 소방업무까지 전담한다. 소방차 2대는 일본이 기증했다. 사람들은 100% 헬멧을 쓰지 않은 채 모터사이클을 타지만, 투발루에선 단속 대상이 아니다. 하긴 시속 30㎞ 이상으로 달리는 자동차나 모터사이클을 한 번도 못 봤다.

범죄는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가끔 나이트클럽에서 다툼이 일어나거나, 사고가 생기면 분쟁 해결에 나서는 정도다. 물론 교도소도 있다. 많아야 4~5명이 수감돼 있다. 하지만 낮에는 각자 알아서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만 돌아오면 된다.

투발루 사람을 만나려면 오후 4시쯤 공항 활주로로 가면 된다. 해가 서쪽으로 스러지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면 너나 할 것 없이 활주로로 모인다. 여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내달린다. 청년들은 축구에 여념이 없다. 1.8㎞ 활주로에서 축구경기가 보통 7~8곳에서 동시에 열린다. 시멘트 바닥과 풀밭을 절묘하게 섞어서 구장으로 쓴다. 축구화가 없어 맨발로 뛰는 선수들은 잔디밭에서, 축구화를 신은 선수는 활주로 구역을 자기 포지션으로 쓴다. 열기는 뜨겁지만 실력은 별로다. 투발루 축구대표팀은 지난 달 25일 피지와의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에서 0대16으로 졌다.

활주로라고 해도 위험할 건 없다. 어차피 일주일에 화, 금(예전에는 월, 목이었으나 8월말 변경) 두 번만 피지를 오가는 비행기가 내리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내리기 직전에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알려준다. 만날 노는 것 같던 경찰들도 이 때는 도로 통제를 하느라 제법 바빠진다.

투발루 사람들은 외국에 노동력을 제공해 살아간다. 1990년대까지는 인근 섬나라 나우루에서 광산 노동자로 일하는 투발루인이 1000명을 넘었다. 새똥이 굳어서 된 인광석(고급 화학비료의 원료로 쓰임)이 풍부했던 나우루에서 일해서 받은 돈을 고국으로 송금했던 것. 그러나 인광석이 고갈되면서 나우루의 경제는 붕괴됐고, 투발루 노동자들도 직장을 잃었다.

현재 최고의 외화벌이는 ‘외항선원’. 400여명의 외항 선원들이 돈을 벌어서 송금한다. 외항선원들이 많은 까닭에 의외로 한국을 다녀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어디가 기억에 남느냐고 했더니 절반 정도가 부산의 ‘텍사스 거리’를 꼽았다. 2002년 조사를 보면 투발루 가정의 34%가 이들 외항 선원의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당연히 ‘외항선원 외화벌이’는 국가적인 프로젝트다. 정부에서 선원학교를 운영한다. 푸나푸티 인근의 작은 섬에 교육시설과 기숙사를 만들어 놓고 한번에 30~50명씩 무상으로 교육한다. 1년 과정으로 4개월은 현장 실습이다.

환경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투발루라는 나라를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우표수집광이다. 공항 남쪽에 우정국이 있다. 투발루에서 유일하게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곳이다. 달 착륙 기념일, 영국 여왕 생일, 월드컵축구 기념 등 투발루와 상관없는 기념일까지 챙겨 우표를 발행한다. 한때 연간 100만 달러씩 벌었으나, 요즘은 50만 달러도 안 된다고 한다.

투발루는 1990년대 초 홍콩의 폰섹스 사업자에게 자국의 국가코드(688)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1년에 120만달러 계약을 맺었다. 언급한 대로 투발루는 전국민이 거의 기독교인인 나라다. 하지만 투발루 정부는 “우리는 그들이 어떤 사업을 하는 지 몰랐다”며 애써 외면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켜보다가 몇 년 전 정리했다.

‘폰섹스’로 먹고 사는 나라라는 부담을 털어내게 해준 대박은 인터넷에서 터졌다. 투발루에 할당된 최상위 도메인(Top Level Domain)인 ‘.tv’덕분이었다. 한국의 ‘.kr’, 일본의 ‘.jp’ 와 같은 성격의 도메인이 텔레비전을 뜻하는 ‘tv’와 같았기 때문이다. 투발루는 1998년 캐나다인 제이슨 채프닉(Chapnik)과 라이센스 계약을 했다. 그는 그 권리를 미국의 아이디어랩(Idealab)사에 다시 넘겼다. 12년 동안 5000만 달러를 받고 초과수익도 배당 받는 조건이었다. 연간 2만 달러의 회비가 없어 UN 가입을 미뤘던 투발루는 이 때부터 당당히 189번째 회원국이 됐다.

최근 동영상 UCC가 인기를 끌면서 ‘.tv’도 살아났다. 1년 평균 등록비용이 6만원 선으로 평균 2만~3만원인 다른 도메인에 비해 2배 정도 비싸다. 한국에서도 올 7월까지 1400여건의 신규신청이 접수됐다.

투발루를 떠나던 날. 그동안 인터뷰를 했던 투발루 사람들이 거의 다 공항에 왔다. 잠깐 만난 ‘친구’에게 조개 목걸이를 걸어주고 인사를 건넨다. 남태평양에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나라 투발루. 낯선 이방인에게 영원한 추억으로 떠있는 나라다. 

투발루는 1978년 영국 식민지서 독립

영국 식민지였던 투발루는 1978년10월1일 독립했다. 옛날에는 엘리스 제도(Ellice Islands)로 불렸다. 1819년 푸나푸티에 상륙한 배의 주인인 영국 의원의 이름에서 따왔다. 영국은 노예무역이 횡행하자 1892년 길버트 제도(현 키리바시공화국)와 함께 보호령으로 만들었고, 1916년 직할 식민지로 삼았다.

1974년 길버트 제도에서 분리된 뒤 1978년 독립하면서 옛 이름인 투발루로 돌아갔다. 투발루는 ‘8개가 함께 서 있는’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투발루는 모두 9개의 큰 섬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작은 섬인 니울라키타(Niulakia)에 1949년에야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섬이 9개라는 것은 크게 봤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전체를 다 합치면 129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돼 있다. 수도인 푸나푸티만 해도 34개의 섬이 있다.

▲ 조정훈 기자


1인당 GDP는 1500달러(2005년 기준), 투발루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 화폐는 호주달러를 쓰고, 1달러 이하 동전만 자국 동전을 사용한다. 투발루 주재 외국 공관은 대만대사관(1998년13월 개설)이 유일하다. 한국과는 1978년 외교관계를 맺었다. 주 피지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198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은 52만 달러의 금품과 물품 등을 무상으로 원조했다. 1997년 사이클론 피해 때 1만 달러 상당의 약품을 보내는 등 비정기적으로 도움을 줬던 보령제약 김승호 회장이 명예영사를 맡고 있다.

요즘은 ‘한류’ 조짐도 보인다. ‘앞서가는’ 투발루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영어 자막이 들어간 한국 드라마를 컴퓨터로 내려받아서 보는 것이 인기다. 이오카페타 셀룰로(22)씨는 “요즘 매일 밤 장미의 전쟁(2004년 MBC드라마·최진실, 최수종 주연) 보는 재미에 산다”고 했다.

투발루인들의 주식은 생선이다. 통계를 보면 1인당 하루 평균 500g의 생선을 먹는다. 생선회를 코코넛 기름에 버무려 먹기도 한다. 거기에 플라카라는 식물과 코코넛이 식용으로 쓰인다. 그밖에 거의 모든 의·식료품을 수입에 의존한다.

투발루 푸나푸티의 환경보존구역. 1년에 40여명 정도의 학자나 관광객들만이 들어오는 곳이다. /조정훈 기자
푸나푸티엔 유치원이 7개가 있다. 부모가 일하러 가는 사이 2~5세 어린이들을 맡아주는 보육원의 성격이다. 초등학교는 2개. 학교당 200여명 정도의 학생이 있다. 중고등학교 격인 ‘세컨더리스쿨(secondary school)’은 1개. 200여명이 다닌다. 이중 초등학교만 무상교육이다.

대학도 있다. USP(University of South Pacific)이다. 남태평양 12개 섬나라 정부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대학이다. 대학이라고 하지만 학생 50명에 강사 2명이 전부다. 굳이 따지면 분교의 성격이다. 1년 동안 다닌 뒤 테스트를 통과하면 피지나 다른 곳에 있는 정규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섬나라 투발루의 민속춤 공연. /조정훈 기자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나라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를 하늘에서 내려다 본 동영상입니다. /조정훈 기자


투발루 선착장에서 노는 아이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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