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천지 괴물’ 요란떨며 한국인 호텔 부수는 중국

    입력 : 2007.09.07 22:40 | 수정 : 2007.09.08 10:58

    공안원들이 호텔 에워싸고 인부들은 다짜고짜 철거
    항의하는 주인 내외를 식당에 몇시간이나 감금시켜

    지난 2일 백두산 천지에는 괴수가 나타났다. 오전 9시쯤 아침 물안개가 채 걷히기 전이었다. ‘장백산 남안(南岸)풍경관리 공사’ 소속 운전사 리쥔(李軍)이 한국 관광객 20여 명을 안내해서 중국 쪽 천지 바위벽에 올라섰을 때 멀리 북한 쪽 동쪽 호수 면에 거뭇거뭇한 괴수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부근에 있던 내외국인 관광객 40~50명이 모두 보았고,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다음 날 오전 이 뉴스를 세계로 타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신화통신을 인용해서 ‘China’s lake monster(중국의 호수 괴물)’라는 제목의 그래픽까지 곁들여 보도했다. “중국판 ‘네스호의 네시’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신화통신이 전 세계로 내보낸 사진은 그러나 물안개가 끼어있는데다가 거리가 멀어 괴물인지 물고기떼인지 구별하기 힘든 것이었다. 괴물이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9일에도 천지에는 괴물이 나타났고, 그때도 신화통신은 충실히 보도했다.

    ▲ 박범용씨가 운영하던‘온천별장’이 중국 당국에 의해 철거가 진행되던 무렵의 모습(사진 왼쪽). 철거된 후 호텔이 들어섰던 자리가 공터로 변했다(오른쪽 사진). /베이징=박승준 특파원
    천지의 괴물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괴물이 출현했다는 호수면이 북한 쪽이고, 북한은 천지의 괴물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화통신이 천지의 괴물 출현에 관해서는 반드시 보도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천지에는 괴물이 나타났고 그때마다 신화통신은 보도해왔다.

    신화통신의 보도 기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과 부합하느냐는 것이고, 신속성은 사실 여부의 다음 기준이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신화통신은 사실성이 떨어지는 천지 괴물에 관해서는 항상 두 팔을 걷어붙이고 보도하고 있다.

    “글쎄요, 저는 10년 넘게 천지 바로 아래서 살아왔지만 괴물이야기는 항상 외지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들었습니다. 천지의 괴물이란 다름 아니라 중국이 백두산을 자기네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빚어낸 환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박범용씨 부부
    박범용(53)씨는 백두산 장백폭포 바로 아래에서 1996년 8월부터 ‘온천별장’이라는 이름의 한국간판의 호텔을 운영해온 사람이다. 호텔에 대한 투자는 당시 지린(吉林)성 산하 기구인 장백산보호구 관리국 당국과의 합작 형식으로 이뤄진 것이었고, 박 사장은 지금까지 천지 바로 아래에서 부인 황옥순(49)씨와 함께 호텔을 운영하며 살아왔다. 박씨 부부에게는 지금 천지괴물 따위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상황이다. 중국 지방정부 당국과 합법적인 계약을 통해 지은 호텔 건물은 지금은 흔적도 없다. 악몽 같았던 지난 7월31일 오후를 생각하면 박씨 부부는 지금도 치가 부르르 떨리고 온몸에 통증이 찾아온다.

    “오후 4시쯤이었어요. 갑자기 무슨 ‘집법대(執法隊)’인가 하는 명찰을 단 공안원 15명이 들이닥쳐 호텔을 에워싸더니 인부들이 달려들어 다짜고짜 호텔을 때려부수는 거예요. 제 마누라는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소리치며 사진을 찍어두려고 카메라를 들었는데, 공안원들이 번개같이 달려들더니 뭐라고 큰 소리를 치며 길바닥에 제 처를 내동댕이치는 겁니다.”

    그날 오후 5시쯤부터 백두산 장백폭포 일원에는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박씨 부부는 빗속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구급차량 모양을 한 차량에 짐짝처럼 실렸다. 온천별장 부근 장백산 관리위원회가 운영하는 란징이란 식당에 옮겨져 감금됐다.

    식당은 비어 있었고, 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와 비를 흠뻑 맞은 터였던 부인 황씨는 온몸이 마비돼갔다. 박씨 부부는 그렇게 밤 9시까지 감금돼서 추위와 공포와 고통 속에서 겨우 의식을 버리지 않고 견뎠다. 공안원들은 밤이 돼서야 “계엄 해제”라고 소리치더니 박씨 부부를 내버려둔 채 어딘가로 철수했다.

    백두산 천지 아래 매표소 내부 구역의 장백폭포 부근에는 온천별장 외에 4개의 호텔이 더 있다. 박씨 부부가 몸을 피한 온천관광호텔과, 천상온천관광호텔· 대우호텔· 장백산국제관광호텔이다.

    온천관광호텔은 원래 박씨 소유였으나 2005년 5월1일 발족한 지린성 산하 장백산 관리위원회로 소유권이 넘어갔고, 과거 대우그룹이 지은 대우호텔 역시 소유권은 중국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단 공동 소유로 되어 있으나 경영은 중국인이 하고 있다. 장백산국제관광호텔은 북한 국적의 재일교포가 소유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호텔은 온천별장과 천상온천관광호텔 2개인데 둘 다 작년 9월부터 철거압력을 받아왔고, 이번에 온천별장이 본보기로 강제철거 당한 것이다.

    장백산 보호구 관리국과 합작 투자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지은 온천별장이 철거 압력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5년 5월 장백산 보호구 관리국이란 행정조직이 해체되고 장백산 관리위원회란 행정조직이 발족하면서부터다. 박씨는 보호구 관리국과 15년 기한의 합작계약을 했는데, 확대 개편된 관리위원회가 2013년까지 6년이나 남은 계약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박씨 부부의 고난이 시작됐다.

    “그동안 온천별장 앞 도로만 파헤쳐 버리지를 않나, 대형트럭을 몇 대씩 고정적으로 세워놓지를 않나, 호텔 문 앞에 크레인을 세워놓지 않나 참으로 치사한 꼴을 많이 당했습니다.”

    유네스코에 백두산을 등록하려면 환경 보호를 해야 한다면서 철거하겠다고 하더니, 유네스코 등록이 물 건너간 뒤에도 “뭐가 잘못됐다”, “무엇을 어겼다”고 위협했고 마침내 경찰력을 동원한 가운데 강제철거와 인권유린을 감행한 것이다.

    한 달만에 겨우 몸을 추스른 박씨 부부는 심양 주재 한국총영사관을 거쳐 주중 한국대사관에 호소해보기 위해 6일 오전 베이징(北京)에 도착했다. 베이징에 와보니 중국 TV에는 매일같이 장백산 관광 광고가 귓전을 때리고 있다.

    박씨는 “중국은 이미 백두산을 10대 명산 가운데 네 번째 명산으로 정했고, 4A급 관광지에서 5A급 관광지로 등급을 올렸다”며 “5A급이 되면 전국에 TV광고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은 이미 ‘중국의 명산, 창바이산’으로 세계에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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