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민족주의 20년 동거 끝나”

    입력 : 2007.09.03 01:23 | 수정 : 2007.09.03 07:37

    한국 민족주의의 대전환<上>
    ‘좌파집권 10년’ 국민실망… 영향력 상실
    ‘反美親北’에 대한 대중호응 크게 줄어

    2004년 6월 김선일씨 피랍 피살사건 때 반미구호를 소리 높여 외쳤던 것에 비하면 이번 아프가니스탄 인질사건에 대해 보여준 한국인들의 대미(對美)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일부의 반대시위 선동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체결은 정상적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반미친북(反美親北)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

    70년대와 80년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좌파와 민족주의의 20년 공존이 끝나가고 있다는 진단이 학계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는 20세기 우리 역사에서 생겨난 수세적이고 저항적인 민족주의와의 결별이라는 점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다수 사회과학자들의 진단이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한국민족주의가 너무 공세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는 이를 ‘한민족 민족주의’에서 ‘대한민국 민족주의’에로의 대전환이라고 명명했다. 다만 이 현상을 좌파와 결합했던 민족주의가 우경화하는 현상으로만 파악할 경우 사태의 핵심을 놓칠 수 있다고 강 교수는 우려했다.

    ‘대한민국 민족주의’가 등장하게 된 데는 정보화 세계화로 무장한 포스트 386세대의 등장, 북한에 대한 인식변화,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한 현실적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도좌파 입장을 가진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좀 더 정교한 분석틀을 제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현재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우파 민족주의와 우파 탈민족주의(시장주의), 좌파 민족주의와 좌파 탈민족주의로 나눌 수 있고 그 중간에 탈민족에 중점을 두는 중도주의와 민족에 중점을 두는 중도주의가 있다.

    우파 민족주의는 전통적 민족주의로 민족주의 사관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우파 탈민족주의는 소설가 복거일씨가 대표하는 입장으로 글로벌리제이션을 강조하는 기업들이 그 기반이다. 좌파 민족주의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등으로 상징되며 친북성향을 보인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지식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김대중 정권 때는 주요한 이론적 기반의 하나이기도 했다.

    좌파 탈민족주의는 전통적 좌파이며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손호철 서강대 교수, 러시아출신 학자 박노자 교수 등이 여기에 속한다. 김호기 교수는 “큰 흐름만 놓고 본다면 현재 지식사회와 대중들 모두 좌파 민족주의에서 우파 탈민족주의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그러나 새롭게 등장하는 민족주의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지는 좀 더 많은 관찰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결론은 유보했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는 “좌파 민족주의가 대중적 영향력을 현저하게 상실하고 있는 이유는 지난 10년간 좌파 집권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발이 좌파와 민족주의를 결합시켜 거대한 힘으로 키워냈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우파와 탈민족주의의 결합을 만들어내는 데 1등공신 역할을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사회의 주도 이념이 좌파 민족주의에서 우파 탈민족주의로 바뀐다고 했을 때 그것은 어떤 함의를 갖는가? 현실정치에서 좌파 민족주의를 대변했던 386세대의 향후 진로는 어떻게 되는가? 우파와 탈민족주의가 결합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대한민국 민족주의’는 애국적인 세계주의로 갈 것인가 아니면 유엔이 경고하는 순혈주의 민족우월주의 국수주의로 전락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각계 전문가들은 논쟁적 진단을 갖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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