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무현 대통령의 씁쓸한 뒷모습

조선일보
입력 2007.09.02 22:55 | 수정 2007.09.02 22:57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31일 PD연합회 창립 기념식에서 다시 언론을 비난했다. ‘축하연설’ 자리였지만 노 대통령이 자리를 가릴 리가 없었다.

노 대통령은 예정시간을 네 배 가까이 초과해 54분간 두서없는 연설을 하면서도 한 가지 그 특유의 사고방식만은 분명하게 드러냈다. 노 대통령에겐 역시 “우리 편 언론”과 “반대편 언론”이 있었다. 세상만사를 편 갈라 내 편, 네 편을 따지는 노 대통령에게 언론이 예외일 수가 없었다. 대통령은 “우리 편 언론이 좋아 보이고 반대편 언론은 미워 보여 반대편 언론과 꾸준히 싸웠다”고 했다. 대통령이 이날 언론을 향해 “독재권력의 앞잡이” “거짓말” “사유물” “스스로 권력”이라고 저주한 것도 ‘반대편 언론’을 미워하고 싸우는 것의 일환이다. 노 대통령 임기, 지난 4년여가 이랬다.

세상을 편 갈라 보기 시작하면 만사가 뒤틀려 보이게 마련이다. 지금 대통령의 언론 취재봉쇄에 대해선 親與친여 매체들도 반대하고 있다. 대통령은 “옛날에는 편을 갈라서 싸우던 언론이 나한테는 다 敵적이 됐다. 내 편을 들어주던 진보적 언론도 일색으로 나를 조진다”고 했다. 事理사리 판단이 아니라 그저 ‘敵적이 아닌 같은 편끼리 왜 이러느냐’는 것밖에 없다.

그런 대통령 눈에 언론의 비판이 곧이 들릴 리 없다. 그래서 말도 ‘비판’이 아니라 ‘조진다’고 한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이) 지지 언론으로부터 말년에 버림받았다”고 했다. 언론이 대통령들의 부정·비리를 비판하는 것조차 노 대통령에겐 ‘지지하다가 버리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대통령은 “요즘 뭐 깜도 안 되는 의혹이 많이 춤을 추고 있다”고 했다.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세무조사받는 건설업자와 지방 국세청장을 연결시켜 준 사건과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정아사건을 무마하려 한 의혹을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은 ‘리틀 노무현’, 변 실장은 노 대통령의 ‘관료 돌격대’라고 한다. 대통령에겐 진짜 ‘내 편’인 사람들이다. 그러니 대통령에겐 그들의 의혹은 무엇이든 “깜도 안 되는 것”이다. 그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도 대통령 눈엔 반대편 언론의 공세이거나 아니면 같은 편 언론이 말년에 자신을 버리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대통령은 전국 47개 언론사의 편집·보도국장이 취재 봉쇄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것에 대해 “아무리 난리를 부려보라”며 일축했다. 그에겐 기자는 모두 敵적이 된 듯하다. 대통령은 “앞으로 기자들이 오라면 안 가고, PD가 오라면 간다”고 했다. 이제 기자는 ‘반대편’이니 PD를 ‘우리 편’으로 만들 셈인 모양이다. 실질 임기 석 달 남짓 남은 대통령의 씁쓸한 뒷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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