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더 큰 봉사를 위하여

    입력 : 2007.08.30 22:49

    ▲ 이인열 뉴델리 특파원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외교단지로 불리는 와지르 악바르 칸(Khan). 이곳 10번 도로 34번지엔 태극기가 펄럭인다. 주(駐)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 인질 사태 이후 국내 신문마다 노란색 대문이 꽉 닫힌 채 무장 경비원 한두 명이 그 입구를 지키는 사진이 실려 유명해진 곳이다. 지난 6월 이곳을 방문했던 기자에겐 이 대문 앞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아프가니스탄 무장 경찰 10여명과 중무장을 한 우리 해병대 군인 5명이 늘 상주한다. 언제 폭탄을 가득 싣고 돌진할지 모르는 탈레반의 공격으로부터 공관을 지키는 일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외교관은 모두 3명이다. 이들이 거주하는 공관은 대사관 바로 건너편. 폭 5m쯤 되는 골목을 건널 때마다 무장 병력들이 ‘인간 장벽’을 쳐 이들을 보호한다. 사열대를 걷는 기분과는 딴판이다. “매일 10초도 안 되는 거리조차 실탄을 장전한 군인과 함께 출퇴근을 한다는 것, 참 오싹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한 외교관의 말처럼, 이게 전쟁지역(war zone),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이다.

    아프가니스탄은 그런 곳이다. 3100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이라지만, 외국인에겐 특히 위험하다. 한순간 방심했다간 목숨을 잃을 확률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아프가니스탄의 외국인들은 해가 지면 바깥 나들이를 하지 않는다. 이곳에선 차를 타고 가다 신호등에 걸렸을 때, 바로 앞 차가 유엔(UN)이나 미국 대사관 직원의 차량이라면 즉각 차에서 뛰어내리라는 얘기가 있다. 테러 때문이다. ‘도로변 폭탄(road side bomb)’이란 테러수법이 자주 쓰이는데, 탈레반들은 그런 차량이 자주 다니는 도로변에 폭탄을 설치했다가 원격조종으로 터뜨린다는 것이다.

    너무 위험한 측면만 강조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이번 인질 사태를 취재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얼마나 알고 갔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웅덩이에 고인 물을 그냥 마시는 곳, 영양실조라서 감기만 걸려도 어린이가 죽는 나라…. 이런 안타까운 사연만 크게 보이고 들리는 바람에 또 다른 위험의 현실을 간과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현지인도 ‘죽음의 도로’라고 꺼리는 카불~칸다하르 간을 고급버스로 이동했다는 점, 게다가 현지인 가이드 한 명 없이 움직였다는 점 등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다.

    아프가니스탄은 나라 전체가 ‘전쟁 박물관’이다. 30년 가까운 전쟁으로 탄흔이 선명한 건물과 폭격으로 푹 파인 웅덩이는 어디서나 보인다. 힘들고 어렵고 위험하니까 봉사활동이 필요하다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돕겠다고 작정했다면, 본인 스스로, 또 보내려는 사람 스스로 현실을 정확히 봐야 한다. 그래야 다른 봉사 활동가와 더 많은 구호 활동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이번 사건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우리 민간 차원의 구호가 중단될 처지다.

    글로벌 시대, 우리는 “룰(rule·규칙)을 잘 안 지킨다”는 지적을 종종 받는다. 봉사 활동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게다가 인질 석방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노력에 대해서는 ‘테러세력과 타협’ ‘몸값 거래’ 등의 얘기가 흘러나온다. 모두 규칙을 제대로 지켰느냐와 관련된 얘기들이다. 더 큰 봉사를 위해, 이번 일은 우리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는 교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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