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왕(日王)을 신으로 받들던 시대에 태어나 6·25 전쟁과 유신을 거쳐 현 정부까지 다 봤어요. 왕조든 사람이든 결국은 흘러갈 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지요.”

동인문학상의 제1회 수상자이자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주간을 지낸 원로 언론인 겸 소설가 김성한(88)의 지난 1년은 정신의 꼿꼿함으로 육체의 노쇠를 거부한 시간이었다. 미수(米壽)를 맞은 그가 역사소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대업’(전 3권·해와비 출판사) 개정판을 냈다. 1966년 ‘이성계’라는 제목으로 냈던 것을, 지난해 출판사측의 제의로 개정 작업에 들어가 1년 만에 새로운 제목과 현대적인 장정으로 다시 선보였다. “바뀐 것은 소설의 제목과 외양만이 아니다”고 설명하는 그의 눈에는 힘이 들어 있었다.

“소설 ‘이성계’를 내고 40년이 흘렀지요. 그 사이 책을 쓸 때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수정할 부분도 생겼습니다. 늘 개정판을 내고 싶었는데, 기회가 왔길래 반갑게 일을 시작했어요.”

40년 전 쓴 소설 ‘이성계’는 고려 말에 창궐했던 왜구 퇴치의 1등 공신을 이성계로 떠받드는 조선 사가들의 시각을 그대로 따랐다. 그는 “이성계에게 제거당한 최영의 전공을 조선의 사가들이 축소했다는 점을 당시에는 고려하지 못했다”고 했다. 고려 말 빈번했던 왜구의 출현도 원래는 식량을 구하러 온 것으로 표현됐으나 개정판에서 고려인을 납치해 매매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고 수정했다. 당시 일본은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서 인신매매가 성행했다는 것이다.

동인문학상 수상과 신문사 주간 경력이 뒷받침하는 그의 문체는 미수의 나이를 의심케 할 만큼 여전히 생생했다. 강화도에 수용됐던 고려 왕족들이 조선 병사들에 의해 몰살당할 때의 장면을 소설은 이렇게 묘사한다. ‘삶이란 촌각을 다투어 벗어나야 할 멍에였다. 그들은 휘청거리는 다리에 온 힘을 몰아 박으면서 한 걸음씩 절벽을 향해서 착실히 다가가고 있었다. 절벽에 이른 선두가 멈추지도 않고, 마치 사태가 무너지듯 그대로 떨어져 물속에 들어갔다. 비명은 있었으나 애걸은 없었다.’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태어난 작가는 1950년 단편 ‘무명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선보인 단편 ‘암야행’, ‘오분간’ 등을 통해 그는 운명이나 종교에 순응하지 않고 실존을 추구하는 적극적 인간형을 창조했다는 평을 받았다. 반면 그의 첫 역사소설 ‘이성계’는 그의 소설 이력에 일대 전환을 이룬 작품이다. 작가는 왕조 개창의 영웅으로 우뚝 섰다가 말년에 ‘왕자의 난’ 등의 불행을 겪으며 무너져가는 이성계의 삶을 허무주의적 관점으로 투시했다. 이후 작가는 ‘요하’(1980), ‘왕건’(1981), ‘임진왜란’(1985), ‘진시황제’(1998) 등의 역사소설을 잇따라 발표했다.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 500년 왕조를 개창한 영웅의 삶은 어떤 의미로 읽혀야 할까. 그는 그냥 빙긋이 웃었다. “이 소설의 주제가 ‘무상’ 아니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지금 일에 충실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진을 찍자”고 하자 그는 넥타이를 찾았다. 그는 느리지만 정성스레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