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사건이 불거진 배경에는 조계종 종단 내부의 뿌리 깊은 권력 다툼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많다. 동국대 이사였던 장윤 스님이 지난 2월부터 신정아씨의 가짜 학위 문제를 주장하다 5월 말 이사에서 해임됐는데, 당시에도 조계종 내 종책모임 간의 다툼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조계종에는 일반 사회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한 종책(宗策·종단의 정책) 연구모임들이 있다. 출신 사찰이나 강원(講院) 동문 등 인연에 따라 결성된 ‘종책모임’들이 일반 정치권의 ‘범여권’ ‘범야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임들은 총무원장 선거, 종회 의원 선거, 종단과 동국학원 운영문제 등을 놓고 경쟁해 왔다.
현재의 범여권은 직지사 중심의 ‘무량회’, 실천불교승가회 중심의 ‘무차회’, 그리고 ‘화엄회’ 등으로 지난해 제14대 종회 의원 선거에서 전체 76명 중 3분의 2를 차지한 것으로 파악된다. 범야권인 ‘보림회’ ‘금강회’는 수에서 밀렸다. 범여권은 2002년 전임 법장(法長) 스님에 이어 2005년 선거에서도 지관 스님을 총무원장에 잇따라 당선시킨 바 있다.
문제는 동국대 이사회의 경우엔 종단 내의 여야 권력구조가 뒤집혀 있다는 점이다. 현 동국대 이사회의 핵심 멤버인 이사장 영배 스님과 이사 영담 스님은 보림회 소속인 반면, 이사에서 해임됐던 장윤 스님은 여권인 무량회 소속이다. 동국대 이사회에서 현재의 야권이 중심이 된 것은 지난 2003년 정대 스님이 이사장을 맡으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전에는 이른바 ‘직지사단(직지사 출신 스님들)’의 대표 격인 녹원 스님(직지사 회주)이 장기간(1985~1987, 1990~2002) 이사장을 맡아왔다.
조계종 내의 여·야권은 수년 전부터 서로 갖가지 의혹을 제기하며 세속 검찰과 법원에서까지 공방을 벌였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5년 불거진 ‘불교중앙박물관 인테리어 공사 비리 의혹’과 ‘중앙대 필동병원 매입 비리 의혹’이다. 양측은 서로 상대편이 “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고, 양측의 종책모임들도 성명을 내고 상대를 공격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