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그들을 사랑했던 이유마저 의심하나

조선일보
  • 김성현 기자
    입력 2007.08.23 00:24

    가수 한영애씨는 1970년대 말 ‘해바라기’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연극을 공부한 적이 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한 신문에 ‘파리 시립 음악원 졸업’이라고 보도됐다. 이후 한씨는 말했다. “왜 들어가지도 않은 학교를 나왔다고 썼느냐고 물었지만 오히려 ‘그래야 음반이 더 잘 팔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음악원에 다니지 않았다는 걸 주변에 일일이 설명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한씨는 동료 가수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가끔씩 자신의 학력을 잘못 방송하는 걸 듣는다고 했다. 그럴 때면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서 정정을 부탁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다고 했다.

    안숙선 명창은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친 것이 정규 교육의 전부다. 김소희 명창에게 판소리를, 박귀희 명창에게 가야금 산조 및 병창을 각각 배웠다. 스승 박귀희 명창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중요 무형 문화재 보유자가 됐다.

    그런 안 명창도 최근 ‘학력 위조 파문’ 때문에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다. 남원여중이나 남원여고를 졸업했다는 옛 기사와 포털 사이트의 인물 정보 때문이었다. 그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안 명창은 학교 교무과에 제출한 서류에도 ‘무학(無學)’으로 기록했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피아니스트 백건우도 최근 몇몇 방송사로부터 콩쿠르 경력에 대한 전화를 받았다. 1969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특별상으로 금메달을 수상했지만, 당시 국내에는 대회 우승으로 와전(訛傳)되기도 했다. ‘학력 위조 파문’과 함께 뒤늦게 당시 일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백건우의 부인 윤정희씨는 “남편은 경력 한 줄을 쓸 때도 조심스럽게 적는다. 콩쿠르 결선 당시에 연습인 줄 알고서 연주를 멈추고 지휘자에게 다가가 상의했던 실수도 후배 음악인들에게 이야기해준다”고 말했다.

    신정아씨 사건 이후, 문화 예술계에도 허위 학력 여부를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는 자성(自省)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인터넷으로 학력과 경력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세상이 되면서 네티즌들도 검증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부정확한 정보를 유포시키기도 했다. 물론 틀린 신상 정보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걸 고의로 방치했던 문화예술인도 반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영애 안숙선 백건우의 경우에서 보듯 그들이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면 그건 자격증이 아니라 음악적 성과 때문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