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의 주역 독일 “우리도 희생자다”

조선일보
  •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07.08.17 22:16

    희생자로서의 독일인
    (원제 Germans As Victims:
    Remembering the Past in Contemporary Germany)
    빌 니븐 엮음|팰그레이브 맥밀런|288쪽|29달러 95센트

    ‘요코 이야기’를 둘러 싼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겨울, 이 책을 읽었다. ‘희생자로서의 독일인’이라는 제목 자체가 ‘요코 이야기’와 관련하여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라는 반인륜적 범죄의 가해자인 독일인들이 자신을 희생자로 기억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독일에서 희생의 기억은 요코의 개인적 기억 혹은 일본 우파의 집단적 기억 방식과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같을까?

    태평양 건너 미국 동부에서 발화되어 한국으로 불똥이 튄 ‘요코 이야기’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비교적 간단하다. 식민주의의 피해자인 한국인들을 가해자로 묘사하고, 가해자였던 일본인들은 오히려 피해자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식민지 경험을 놓고 볼 때 ‘한국인=희생자 대(對) 일본인=가해자’라는 등식은 대체로 맞지만, 현실을 대단히 단순화시킨다는 점에서는 틀리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인 2004년 6월, 프랑스 랑빌 마을에 있는 2차 대전 전사자 묘역을 찾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독일 총리가 독일군 전사자 322명의 묘비 사이를 걷고 있다. /AP
    민족의 차원을 떠나 개개인의 차원에서는 한국인 가해자도 일본인 희생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종전 직후 만주와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약 3~9만명의 일본인들이 러시아 적군, 중국인, 한국인들에 의한 폭력이나 질병, 굶주림 등으로 사망했다는 추계는 일본인 희생자의 존재를 분명히 입증한다. 또 일본인 희생자의 대부분이 노인과 여성, 어린아이들이었다는 점도 의심의 여지는 없다. ‘요코 이야기’의 문제는 저자가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거나 사실을 왜곡했다는 점이 아니다. 난징 대학살 등과 같은 일본 식민주의의 범죄행위나 잔학행위 등의 역사적 맥락이 생략된 채, 일본인 여자 아이의 개인적 고통으로만 전쟁이 기억되고 있다는 점이다. 요코의 개인적 기억의 구도는 히로시마를 종종 아우슈비츠와 비교하고 일본인과 유대인을 백인 인종주의의 대표적 희생자라고 간주하는 일본 사회의 집단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귄터 그라스의 ‘게걸음으로 가다’가 돋보이는 것도 이 대목에서이다. 독일 민간인들의 고통과 희생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을 나치 독일의 잔학행위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킬 수 있는 그라스의 역사적 균형 감각이나 작가적 안목을 ‘요코 이야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의 고통을 통계나 수치로 환원시킬 수는 없겠지만, 패전 직후 독일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희생에 비하면 만주와 한반도 일본인들의 운명은 훨씬 나은 것이었다. 동프로이센에서의 독일인 피난민 혹은 강제 추방자들의 규모는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강제이주’라고 평가되며 그 수는 무려 14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약 200만 명이 연합군의 공습이나 폭격, 굶주림과 전염병, 복수에 불타는 폴란드인이나 체코인 등 슬라브인들의 ‘개인적 사법적 정의’, 즉 테러와 린치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노인이나 여성, 어린이였다. 또 한 통계에 의하면 약 150만 명에 이르는 독일 여성들이 주로 러시아의 적군 병사들에게 강간당했다.

    동프로이센이나 슬라브 점령지역에 거주했던 이 독일인들의 희생에 대한 기억이 억압되었던 더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나치의 적극적 공범자 혹은 수동적 동조자였다는 점이다. 동유럽에서 추방된 독일인 피난민들의 희생은 요컨대 유대인 학살이나 슬라브족의 노예화 등 나치의 잔학행위라는 괄호 속에 묶인 희생이었다.

    한 인종을 말살하려 했던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테러행위의 공범자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독일인들의 희생은 공적 담론의 영역에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금기였다. 전후 독일에서 독일인들의 희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터부였다는 정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희생에 대한 기억과 담론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서독의 공식담론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폭력과 무고한 독일인들의 희생이 강조되었다. 특히 독일인 피난민에 대한 소련 적군의 살인과 강간, 약탈이 강조되었다. 나치 독일의 잔학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독일 여성들에 대한 기억은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폭력의 수동적 희생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기억으로 대체되었다.

    사회주의 형제국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했던 동독에서는 드레스덴 등 동독 도시들에 대한 영·미 공군의 무차별 폭격이 강조되었다. 그것은 사회주의 독일의 재건을 저지하기 위한 영미 양국의 교묘한 음모였다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연합국 공군이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행위의 피해자였다는 담론이 동독에서는 자리 잡게 되었다.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공론화되기 시작한 ‘독일인 희생자’론은 금기 타파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가 다시 절대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연합군 폭격기편대를 나치의 ‘특수부대’에 빗대고, 독일의 방공호를 강제 수용소의 유대인 ‘소각로’로, 연합군의 폭격 목표가 독일인의 ‘절멸’이었다고 보는 극단적 주장은 공중폭격의 독일인 희생자들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와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또 ‘독일피난민동맹’의 우산 아래 모인 동프로이센의 독일 피난민들은 ‘절멸수용소’, ‘제노사이드(인종학살)’ 등의 용어를 사용해 자신들의 희생을 묘사하기도 했다. 홀로코스트의 공범자였던 이들이 코소보와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자행된 인종청소를 거세게 비난하고, 패전 직후 슬라브인들의 폭력에 희생자가 된 자신들의 희생자 담론을 정당화하는 유비로 사용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의 역설이다.

    독일 민간인들의 희생을 나치의 잔학행위에서 떼어 놓고 탈역사화시키는 독일의 집단 기억은 원자폭탄 피해를 식민주의적 침략의 역사에서 탈맥락화시키는 일본의 집단 기억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홀로코스트와 난징학살의 가해 주체가 희생자로 둔갑하는 이 기억의 마술은 가해자와 희생자의 경계가 가변적임을 드러내준다. 희생자들이 가해자들보다 반드시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다. 판을 뒤집어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어야겠다는 욕망이 지배하는 한, 오늘의 희생자들은 내일의 잠재적 가해자일 뿐이다.

    편저자 빌 니븐(Bill Niven)은 영국의 노팅햄 트렌드 대학에서 독일현대사를 가르치는 정교수이며 독일의 나치 기억 문제를 연구하는 중진 학자이다. 스테판 버거(Stefan Berger)를 비롯한 10여명의 필진 구성도 충분히 신뢰할 만한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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