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사랑] 정당의 존속기간

조선일보
  • 이덕일 역사평론가
    입력 2007.08.12 22:50

    ‘성종실록’ 15년(1484) 8월 6일조는 도승지로 임명받은 김종직과 그 문인(門人)들에 대해 “사람들이 이를 비평하여 ‘경상도 선배당(慶尙先輩黨)’이라고 하였다”고 적고 있고, 김종직도 자신을 전별(餞別)하는 문인들을 ‘우리당(吾黨)’이라고 불렀는데 김종직을 종주로 삼았던 정치세력이 사림(士林)이다. 재야 사림은 집권 훈구파와 100여년에 걸친 투쟁 끝에 정권을 잡았으나 그 직후인 선조 8년(1575)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함으로써 조선 정당사의 문을 연다.

    보다 젊었던 동인은 선조 24년(1591) 이산해(李山海) 중심의 대(對)서인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유성룡(柳成龍) 중심의 남인으로 분열된다. 광해군 때 집권당이었던 북인은 32년간 존속하다가 인조반정(1623)으로 강제 해산된다. 남인은 숙종 5년(1679) 대(對)서인 강경파인 윤휴 중심의 청남(淸南)과 온건파인 허적(許積) 중심의 탁남(濁南)으로 분열하는데, 이때까지만 따져도 88년간 존속했다. 그러나 청남·탁남의 분열은 일시적이었고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일제에 국권을 빼앗길 때까지 계산하면 무려 314년간 존속했다.

    서인들은 인조 1년(1623) 인조반정을 주도한 공서(功西)와 반정에 가담하지 않은 청서(淸西)로 나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숙종 9년(1683) 송시열 중심의 노론(老論)과 윤증(尹拯) 중심의 소론(少論)으로 나뉠 때까지 108년 동안 단일 정당으로 존재했다. 노론과 소론으로 갈린 이후에도 1905년까지 각각 222년 동안 존속했다. 노론·소론·남인은 왕권과 신권문제, 신분제나 토지문제에 대한 당론(黨論)이 서로 달랐던 명실상부한 정당이었다.

    때로는 집권하기도 했지만 정권을 빼앗기면 재야로 돌아가 당파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학문을 닦고 후학을 기르면서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권력을 빼앗길 것 같다고 탈당하거나 다른 당에 입당하면 사류(士類)로부터 버림받고, 사론(士論)으로부터도 배척받아 설 자리가 없어졌다. 탈당과 창당을 일삼는 현재의 일부 정치인들과 지행합일(知行合一)이 기본이었던 조선 선비들을 비교하는 자체가 무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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