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지법인에 입사한 중국 직원 중 쓸 만하다 싶은 사람은 1~2년만 있으면 다 나갑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 재벌그룹 해외 현지법인 대표 20여명이 미국 GE(제너럴일렉트릭)의 임원을 초청해 강연을 듣고 난 뒤 그중 한 사람이 질문했다.
그러자 GE 임원은 대답 대신 반문했다. “그 중국 직원이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나요? 외국 직원도 한국 직원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고 인사 평가를 받나요?”
미국계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컴퍼니의 김연희 부사장은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신입 임원 워크숍에 가 보면 놀란다고 했다. 외국인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매출의 3분의 2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는데도 말이다. 그는 이런 이유로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수출기업’이라 할 수는 있어도 ‘글로벌기업’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실제 우리 대기업 경영진에 외국인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해졌다. 확인 결과는 충격이었다.
현대자동차 임원 186명 중 외국인은 전무했고, 포스코는 1명, LG전자는 3명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827명 중 18명인데, 그중 13명은 고문이다(3월 말 분기보고서 기준·미등기 임원 포함).
해외 현지법인은 좀 많겠거니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LG전자는 81개의 현지법인 중 외국인 법인장이 전무하고, 포스코는 2개, 현대차는 4개 현지법인만 외국인 책임자를 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80개 현지법인에 외국인 장(長)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최근 국내 대기업 중에는 외국 자본에 인수된 것도 아닌데 외국인 CEO를 자발적으로 영입하거나(두산) 외국인을 임원으로 승진시키는 곳이 있지만 이런 것이 뉴스가 될 정도로 아직은 예외적인 현상이다.
국적 불문하고 인재를 받아들이는 글로벌기업들과는 대조적이다. 일례로 GE는 한국에 20개의 현지법인이 있는데, 법인장 전원이 한국인이다. 직원도 대부분 한국인이다. 미국 GE 본사 입장에선 한국 영업을 모두 외국인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다. 또 세계적 실리콘업체인 다우코닝은 경영진의 40%가 외국인이다.
우리 기업들이 인력 글로벌화에 뒤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우리에게 개방적이고 다문화적 전통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영진이 외국인과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없고, 영어 커뮤니케이션도 잘 안 된다. 또 우리 사회가 시스템보다는 사람에 의해 임기응변으로 움직이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실력보다는 눈치코치가 빨라야 하고, 외국인 직원이 융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국경 없는 글로벌 경쟁 속에 국적(國籍)으로 인재를 제한하는 것은 스스로 손발을 묶는 격이다.
로마가 왜 번성했는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로마인은 지성(知性)은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은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은 카르타고인에게 뒤떨어졌다. 그런데도 로마가 1000년을 번영한 것은 타민족에 대한 개방성과 유연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시오노 나나미는 분석했다. 로마는 피부색과 출신지를 불문하고 가치를 공유하면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세계를 경영할 우수 인재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 기업이 제품과 시장의 글로벌화에 이어 인재의 글로벌화에도 성공해 진정한 글로벌기업으로 우뚝 섰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