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간지 ‘타임’ 7월 2일자 커버스토리는 제 35대 미국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생애와 업적을 회고하면서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도 상세히 다뤘다.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그를 저격한 암살범의 배후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케네디 암살에 음모가 개입됐다고 믿는 미국인의 비율은 1968년 3분의 2에서 1990년 90%로 껑충 뛰어 올랐으며, 4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7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여 우주비행사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달에 꽂아 둔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중계 장면이 문제가 됐다. 대기가 없는 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달 착륙은 조작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성조기를 매단 깃대가 흔들릴 때 우주비행사가 손을 대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러나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승리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 정부가 속임수를 꾸며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1997년 8월 31일,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는 파파라치, 즉 유명 인사를 쫓아다니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를 피하려다 자동차 충돌사고로 숨졌다. 그러나 남자관계가 복잡한 그녀가 권력을 누리는 것이 마뜩잖은 영국 왕실이 교통사고에 작용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처럼 사건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고 보는 시각을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이라고 한다. 음모이론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권력보다는 대중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힘이라고 전제한다. 사람들이 음모이론에 현혹되는 까닭은 복잡한 쟁점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발생하건 그 뒤에 거대한 힘이 개입되어 있다고 여기면 복잡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3년 3월 영국 런던대의 패트릭 레만 교수는 영국 심리학회에 발표한 음모이론 연구 보고서에서, 인간의 심리 저변에는 파급효과가 큰 사건일수록 그 원인도 거창할 것이라고 추리(major event-major cause reas oning)하는 성향이 깔려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레만 교수는 대학생 64명에게 신문에서 잘라낸 것처럼 보이는 기사를 제시했다. 물론 이 기사는 가짜로 만든 것이었다. 가상 국가의 대통령에 관해 4종류로 꾸민 기사였다.

첫 번째 기사는 대통령이 총을 맞아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 기사는 대통령이 피격되지만 목숨을 건진 것으로, 세 번째 기사는 총알이 대통령을 빗나갔으나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피격 직후 사망하는 것으로, 네 번째 기사는 총알이 빗나가 대통령이 살아남는 것으로 작성되었다. 레만 박사는 이러한 신문기사를 읽고 암살범이 단독 범행인지 아니면 배후에 다른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대부분 저격수 뒤에 어떤 세력이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주요 사건에 거대한 원인이 숨어 있다고 추리하는 성향이 농후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영국 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 7월 14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레만 교수는 음모이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로 인터넷을 지목했다.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제공하는 웹사이트가 2004년에 3만 6000개를 넘었을 정도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의 배후에 CIA가 있다고 주장하는 다큐멘터리 '루스 체인지'를 웹사이트(www.loosechange911.com)에서 내려 받은 횟수가 1000만 번을 상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음모이론은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상대방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해 갖가지 음모 이론이 인터넷을 통해 기승을 부리지 말란 법이 없다. 16세기 이탈리아 정치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1532)에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가 성공하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설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