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업실 칠판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말이 적혀 있다. 10년 전쯤, 나는 잡지사 기자, 그는 신문사 기자였을 때 그의 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삼각파도 대처법에 관한 매뉴얼 책을 추천했다. 선원들이 보는 책이었다. 그는 닦고 조이고 기름칠 때,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혼은 수리공에 가깝다. 공구에 대한 그의 페티시즘적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공구로도, 매뉴얼로도 대처할 수 없는 일에 관해서라면 그의 문장은 그쯤에서 멈춘다.
공구와 매뉴얼이 없다면 아마도 그는 쓰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가 20여 년 간 몸담았던 직장의 직업윤리였다. 그가 ‘겨우’ 쓰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그는 단어의 운용에도 매우 인색한데, 그 역시 공학적으로 한글을 다루기 때문이다. 자음과 모음을 이리저리 연결시켜서 얻어내는 문장이어서 그의 글은 만연체가 불가능하다. 그 글은 또한 언제라도 자음과 모음으로 해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문장은 허무한 느낌마저 든다. 언젠가 해체될 것을 알면서도 조립해야만 하는 자의 허무다.
조립하고 해체하는 세계 너머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만지는 언어로는 그 세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 그럴 때 보면 그는 ‘공자(孔子)주의자’다. 매뉴얼대로 공구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셈이다. 그가 최상의 인간으로 믿고 있는 사람은 육군 대위인데, 그 까닭은 육군 대위야말로 필드 매뉴얼에 가장 근접하게 행동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에게 육군 대위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음악가다. 그들은 공학적으로 행동한다.
그의 고향은 서울 삼청동이다. 그러므로 그건 사대문 안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 감각이리라. 시정에는 시정을 움직이는 원리가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 원리를 지킬 때, 시정은 즐길 만한 곳이다. 공구와 매뉴얼의 세계를 믿을 때, 그는 세상 안에서 잘 놀 수 있다. 그러니 계속 닦고 조이고 기름쳐야만 하리라. 그래야만 이 세계를 한 번 더 지독하게 긍정하면서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내가 들은 가장 인상적인 말은 “내년 봄까지 술값은 모두 내가 낸다”였다. 어느 해 가을이 한참일 무렵, 들었던 말이다. 적어도 꽃이 필 때까지는 함께 술을 마실 수 있겠구나고 혼자 안도하던 찰나, 그가 덧붙였다. “내년 연말까지는 김연수가 사라.” 다행이다. 그리고 몇 해가 더 흘렀지만, 우린 지금껏 아주 잘 놀고 있다. 술은 거의 대부분 그가 산다.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