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보라, 명품의 모든 것이 보인다

조선일보
입력 2007.07.20 23:20 | 수정 2007.07.21 04:09

럭스플로전 | 라다 차다·폴 허즈번드 지음|김지애 옮김|448쪽|2만원

홍콩에 사는 28세 여성 사라 웡은 평범한 갈색 루이비통 가방에 이제 싫증이 났다. 요즘은 구찌 핸드백과 크리스챤 디올 구두를 신고 다닌다. 파티용으로는 아르마니와 프라다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자신보다 스물두 살 많은 사업가 제임스와 함께 사는 그녀는 파리나 밀라노로 자주 쇼핑을 떠난다. 명품 신발 60켤레와 핸드백 35개를 가지고 있지만 2~3일에 한 번은 명품 매장에 들러야 위안이 된다.

일본의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평범한 여성 오카노 게이코는 ‘에르메스 마니아’다. 그녀는 지방시와 페라가모, 그리고 제이피 토즈와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 같은 소수 브랜드 제품의 VIP 고객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바를 운영하는 40대 남자 헨리 리는 계절마다 프라다와 구찌 매장에 들러 쇼핑을 즐긴다. 요즘은 D&G와 존 갈리아노 브랜드에 새롭게 눈을 떴다.

아시아가 세계최대 명품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루이비통 까르띠에 구찌 버버리 에르메스 샤넬 프라다 페라가모 아르마니…. 패션업계를 이끄는 이들 럭셔리 브랜드의 매출은 800억달러(약 73조원)로 추산된다. 이중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유럽(35%)과 미국(24%)보다도 큰 37%에 달한다.

▲ 중국 상하이의 한 쇼핑몰에 설치된 대형 루이비통 가방 모형 앞으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오른쪽 위‘루이비통(路易威登)’이라는 중국어 표기가 이채롭다. /AP
마케팅 컨설턴트인 두 저자는 아시아 각국이 서양의 럭셔리 브랜드에 열광하는 현상과 이유를 분석한다. 이들에 따르면 아시아의 명품 소비는 정복�경제성장�과시�동조�일상화 단계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20세기 초반 서양의 정복으로 인간성마저 파괴되는 비참한 상황에 놓였지만 이후 지속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명품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경제대국 일본은 명품 소비의 최종단계인 일상화 단계에 이르렀다. 일본 내에서 팔리는 명품은 세계 명품시장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해외여행을 다니며 명품에 탐닉하는 일본 관광객까지 합한다면 그 수치는 세계 매출의 40%에 달한다. 일본은 전 세계 루이비통 매출의 88%를 차지하고 있다. 도쿄 오모테산도의 루이비통 매장에 1000여명의 인파가 새벽부터 줄을 서서 개장을 기다리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부 십대 소녀들은 명품을 갖기 위해 중년 남성과의 잠자리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은 명품시장 성장속도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8~10%지만 명품시장은 매해 25%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3년 후면 명품을 살 능력을 갖춘 중국 인구는 2억5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명품 소비의 세 번째 단계인 과시 단계에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확산될 시장이다.

명품시장에서 한국은 빠질 수 없는 나라다. 저자들이 보기에 한국은 명품 소비에서 독특한 현상을 보인다. 한국은 럭셔리 브랜드 소비를 비판하는 분위기를 가진 유일한 나라다. 같은 유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의 엘리트 구매층이 ‘체면’을 위해 명품 소비를 한다면, 한국의 최고 부유층은 ‘체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선 명품을 구매하지 않는 기현상을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 단 10년 만에 명품 유행의 네 번째 단계인 동조단계에 이른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이 20~30년을 거쳐 이 단계에 이른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속도다. 저자들에 진단에 따르면 한국이 명품시장으로 부상한 가장 큰 이유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에 있어서는 종교적인 영향력만큼 힘을 발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들은 예뻐지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성형수술·피부클리닉·미용실·피트니스 센터엔 여성들이 넘쳐난다. 홍콩과 싱가포르, 최근 IT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도, 평균 4~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도 럭셔리 브랜드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그런데 왜 동양인들은 서양의 명품에 열광하는 것일까. 저자들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하나는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동양 명품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화 시대를 맞은 동양인들은 국제적인 상징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럭셔리 브랜드에 열광하는 이유는 서양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최고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아시아의 명품 열광을 ‘럭스플로전’이라 이름 붙인다. 럭셔리(Luxury·명품)와 익스플로전(Explosion·폭발)의 합성어다.

저자들은 아시아의 명품 열광에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중국의 첩이나 한국의 술집 호스티스, 홍콩의 둘째 부인 그리고 대만의 정부(情婦)는 �션계를 이끄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말할 때조차도 단지 그런 현상을 말할 뿐이다. 사실 저자들의 목적은 서양의 럭셔리 브랜드 업체들에게 아시아의 ‘럭스플로전’을 더욱 확산시키기는 방법을 제공하는데 있다. 저자들은 인기스타들처럼 사회에 영향을 주는 ‘네트워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패션잡지와 미디어 기자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면서 ‘프레스 컬렉션’을 만들고, 브랜드 파티에 유명인사를 참석시켜 ‘버즈’(Buzz·입소문)를 일으키라고 권고한다.

아시아의 명품 열광은 아직 초기에 불과하다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다. 일본 국민의 25%, 홍콩과 싱가포르는 15%, 한국 소비자는 12%만이 명품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뒤를 따르는 중국과 인도, 동남아 여러 나라들의 ‘럭스플로전’이 터지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대폭발이 예측된다.

◆더 읽을 만한 책

‘럭셔리 신드롬’(제임스 트위첼 지음, 미래의창)은 현대사회에서 사치가 대중화되는 현상을 분석한다.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필수적인 소비 욕구’가 경제·사회적 최하위 계층에까지 확산되는 현상을 조목조목 짚고, 조직화된 럭셔리 산업이 사람들의 꿈과 욕망을 지배하는 방식을 파헤친다. ‘럭셔리 코리아’(김난도 지음, 미래의창)는 서울대 교수인 저자가 한국 사회의 명품열광을 분석한다. 명품 소비행태를 과시형·질시형·환상형·동조형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사치욕망’이 생기는 원인을 압축성장과정에서의 소비활성화 정책,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벼락부자’의 양산 등에서 찾는다.

‘패션과 명품’(이재진 지음, 살림)은 유명 디자이너와 명품을 사랑한 사람들 같은 뒷이야기를 통해 럭셔리 브랜드가 명품이 된 까닭을 설명한다. 명품을 옹호하는 쇼핑광의 ‘나는 명품이 좋다’‘너희가 명품을 아느냐’(이상 나카무라 우사기 지음, 사과나무), 명품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에 대해 쓴 ‘이것이 명품이다’(조미애 지음, 시지락)도 럭셔리 브랜드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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