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국제사회가 구명운동 나선 북한의 사형수 손정남씨

입력 2007.07.20 23:09

[왜 그는]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처형 위기에 처한 북한의 손정남씨 구명 운동이 미국 의회에서 확산되고 있다. 톰 랜토스(Lantos) 미 하원 외교위원장은 16일 손정남씨의 사형집행을 유예해줄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뉴욕의 북한대표부에 보냈다고 밝혔다. 〈본지 7월18일자 보도〉



기독교인이며 양심수인 북한주민 손정남(49 ·함북 청진시 거주)씨를 구명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랜토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서한을 보내기에 앞서 지난 7월 12일에는 미국 상원의원들이 손정남에 대한 구명활동을 촉구하는 서한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발송했다. 유럽연합(EU)의회도 지난 2006년 6월 공개처형 위기에 처한 손씨와 관련, 북한인권 문제를 총회 안건으로 긴급 상정했었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손정남씨는 누구이고 그를 왜 북한당국은 사형이라는 최고형을 선고했을까? 북한은 국제사회의 구명 요구에 대해 공화국을 악의적으로 음해하는 세력의 책동이라며 반발하면서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 2004년 북한 인민군 로켓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당시의 손정남씨. /손정훈씨 제공
# 98년 탈북중 부인 사망… 한국인목사 도움받아 中서 신학공부

손씨는 북한 인민군 호위사령부(김父子 경호부대)에서 10년을 근무한 핵심계층이었다.

1990년대 후반 식량난으로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하자 체제에 환멸을 느낀 손씨는 먼저 탈북한 동생 정훈씨의 도움을 받아 1998년 1월 가족들을 데리고 탈북했다. 한국으로 가는 길이 막혀 고생하던 손씨의 부인은 임신한 상태에서 지병이 악화돼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중국에서 사망했다. 당시 손씨의 절망은 극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중국 선양(瀋陽)에 거주하던 한국인 목사의 도움으로 정남씨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그는 1년간 선양의 비밀아지트에서 신학공부를 했고, 전도사가 됐다. 당시 중국 공안의 감시 때문에 떨어져 살았던 동생 정훈씨는 “몇 달 만에 만나본 형이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진심에 찬 모습으로 설교를 하는 걸 보고 형이 너무나 달라져 있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정남씨는 함께 공부했던 탈북자 팀을 이끌고 중국에서 탈북자 선교에 나섰고, 북·중 국경을 통해 성경책을 보내는 일도 함께 했다고 한다.

손정남씨는 함께 일하던 탈북 동료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바람에 붙잡혔고, 결국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

북한으로 끌려간 손씨는 특수계층이었다는 이유로 더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만 3년 동안(2001~2004) ‘죽어서도 나올 수 없다’고 소문이 난 함북 도(道)보위부 지하 교도소에서 지냈다고 한다. 당시 심한 고문을 받은 탓에 손씨의 몸은 만신창이 됐다. 그가 살아 나오게 된 것은 북한에 남아있던 가족들이 손씨를 구명하기 위해 뇌물과 신원보증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구명했기 때문이다. 손씨는 지하 교도소에서 받은 고문으로 김정일 정권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 탈북자 선교하다 강제北送… 3년간 지하교도소에서 고문당해 

그 이후 인민군 로켓연구소(미사일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손씨는 출장으로 위장해 중국으로 몰래 나온 뒤 한국으로 망명한 동생 정훈씨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손씨의 동생 정훈씨는 당시 형에게 한국행을 권유했으나 “나는 기독교인이고 북한에 복음을 전파할 것이며 끝까지 김정일과 싸우겠다”는 형의 의지를 꺾을 수 없어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그 이후 손씨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위부의 모진 고문을 받을 때는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웠지만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으며 그곳에서 믿음은 더 확고해졌다. 믿음을 가지고 여기(북한)에서 죽어도 두려운 것이 없다”며 자신의 신앙고백을 했었다. 그 이후 수차례 북·중 국경을 통해 남한의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던 손씨는 지난해 1월 다시 중국에서 동생을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으려다가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됐다.

# 국경 넘다가 다시 붙잡혀… 외국 기독교인들이 구명 나서 

탈북 전과가 있는데다 가지고 있었던 물건 가운데 성경 등이 발견돼 북한당국은 그를 간첩으로 몰아세웠고 급기야는 ‘민족반역자’로 규정해 북한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북한에 있는 손씨의 지인들이 이 사실을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알려오면서 손씨의 상황이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됐다.

정훈씨는 “한국정부의 도움을 받아보려고 했지만 애당초 여기에 관심을 가져주는 한국정부 관리는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정훈씨는 형을 살리기 위해 2006년 4월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인권위법은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에 한에 적용되는데 조사대상이 북한주민이고 북한 내부에서 발생한 일인데다 가해자가 북한정권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인권위의 조사영역에서 벗어난 것으로 판단한다”며 손씨의 진정을 각하시켰다.

손씨가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소식에 분노하며 행동에 나선 사람들은 외국의 기독교인들이었다. 영국의 인권변호사 엘리자베스 바사(Elizaeth Batha)와 기독단체인 CSW(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가 손씨 구명을 위해 유럽 의회를 움직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미국의 최대 기독교 복음단체인 VOM(순교자의 소리)가 손씨를 구명하기 위해 미 의회를 움직이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게 된 것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