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여운형의 죽음과 좌파 테러

조선일보
  • 남광규 매봉통일연구소장
    입력 2007.07.20 22:45 | 수정 2007.07.21 09:06

    해방이후 고비마다 테러당해
    “누가 죽였나” 다시 연구해야

    ▲ 남광규 매봉통일연구소장
    7월 19일자 조선일보는 해방 정국의 정치지도자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1886~1947)이 좌파, 구체적으로 박헌영계에 의해 암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원로 정치학자 이정식 교수의 연구를 통해 제기하였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몽양이 극우파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기존의 통설과는 반대되는 사실이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몽양의 최후에 대한 사실 여부가 밝혀지는 연구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박헌영과 여운형은 해방 정국 좌파의 거두로 서로 협력과 경쟁의 애증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히 극좌파인 공산당을 이끈 박헌영은 중도 좌파의 지도자인 여운형을 발판으로 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는데 그 전위세력이 공산당 내 소위 ‘재건파’였다. 그런데 재건파, 나아가 공산당이 해방 직후 국내에서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해방 직후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를 자신의 세력으로 접수하면서부터다. 이 과정에서 여운형은 재건파에 의해 철저하게 견제당했고 의문의 테러를 당하기도 하였다.

    구체적으로 그 과정을 보면, 1945년 8월 20일 전후하여 건준 조직에 들어오기 시작한 재건파는 건준을 자파 조직으로 접수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여운형에 대한 1차 테러가 발생하는데 그 계기는 일제의 요구로 건준이 치안위원회의 명칭으로 변환된 것을 이유로 재건파가 노골적으로 여운형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면서부터다.

    1945년 8월 18일 오후 일제 총독부는 여운형에게 건준 간판을 떼도록 요구했고 이에 여운형은 건국 활동보다 치안 유지에 전념하겠다는 선으로 타협을 보았다. 이에 건준 내부의 공산주의자들은 이를 일제에 굴복하는 처사라 하여 여운형에게 거세게 항의, 도전하였고 그날 밤 11시 여운형은 테러를 당했다. 이후 여운형은 며칠간 건준 활동을 못했고 부위원장인 안재홍이 역할을 대신했다. 여운형의 부재는 건준 내부 공산세력의 전횡을 더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운형의 부재 중 건준 내 공산파는 우파의 건준 참여를 비토시켰고 재건파의 참여를 촉진시켜 2·3차 개편 시에는 재건파가 건준을 독점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건준을 재건파가 사실상 접수한 것이 해방 초기 공산세력 확장의 1차 계기로 작용했다면 2차 세력확장의 계기는 건준을 ‘인민공화국’으로 개편하면서부터였다. 이 과정에서도 여운형은 재건파에 의해 철저하게 무력화되었다. 1945년 9월 6일 좌파에 의해 자칭 정부라 하는 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다음 날 여운형은 또다시 테러를 당해 2주 이상을 경기도 가평에서 요양하게 된다. 묘하게도 건준 시기에 테러 피습으로 2차 조직 개편에 참여할 수 없었던 여운형은 인공 수립 후에도 테러 피습으로 인공 집행위원 선출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공 집행위원 선정을 재건파가 독자적으로 행사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몽양은 해방 직후부터 극좌파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당했고 조직개편과 관련된 중요한 정치적 고비에서는 의문의 테러를 당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최후 역시 해방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 재검토될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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