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엎드려 그린 1급장애 만화 세상밖으로 날다

조선일보
  • 정지섭 기자
    입력 2007.07.16 23:53 | 수정 2007.07.17 04:03

    하반신 마비 지현곤씨, 생애 첫 작품 전시회
    척추결핵 앓아 초등 1학년 중퇴 성인될때까지 만화 벗삼아 홀로 습작
    전문가 “지씨 카툰, 국내 최고수준” 거동 불편해 전시회엔 참석못해

    결핵균이 척추로 스며 뼈를 녹이는 무서운 병인 ‘척추결핵’에 걸린 그는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때 학교를 중퇴한 뒤 마흔이 되도록 2층 단칸방에 틀어박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 다리가 거의 발달하지 않아 바지를 입을 수도 없는 허리 아래를 담요로 감싼 채 두 손으로 기어다니고, 밥을 먹고, 그림을 그렸다.

    이제 그 그림들은 ‘작품’이 됐고, 그는 ‘만화 작가’라고 불린다. 오는 19일부터 8월 2일까지 남산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생애 첫 작품전을 갖는 지현곤(46·경남 마산시 월령동·신체장애 1급·사진)씨다.



    ‘지현곤 카툰기획전’ 개막을 사흘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16일,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전시실은 한 편의 만화책 같았다. 60평 공간을 가득 메운 70개의 A3(가로 29㎝x세로 42㎝) 크기 액자들에는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는 광경을 TV화면으로 보고 있는 동물들, 둥지의 알이 ‘프라이’가 돼 버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어미새, 방아쇠를 당기자 총탄 대신 꽃송이가 발사되어 화들짝 놀란 군인들을 그린 1컷짜리 카툰(cartoon·사회나 인간에 대한 풍자적 시선을 보여주는 한 컷짜리 만화)이 걸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작품들은 대부분 셀 수 없이 많은 점과 짧은 선들을 꼼꼼하게 찍어 점묘화처럼 그렸다.

    그러나 작가 지현곤씨는 서울의 전시장엔 가지도 못한 채 이날도 마산의 2층 단칸방에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탈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곤 만화 잡지와 TV보는 것뿐이었어요. 말과 글도 만화로 배웠습니다. 90년대 들면서 만화잡지 독자란에 그림을 투고하니까 자주 실리더라고요.”

    ▲ A3(가로 29㎝x세로 42㎝) 크기로 그린 지현곤씨의 카툰 작품 중 하나. 둥지의 알이‘프라이’가 돼 버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어미 새를 그렸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제공

    그가 남들처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이 그림 그리기였다. 누구도 그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종이에 볼펜으로 만화책을 베끼고 또 베끼며 만화 그리기에 빠져들었다. 중·고등학교 문턱도 구경 못한 그에게 만화는 생활의 ‘전부’였다.

    그러기를 30여년. 93년 대전국제만화영상전 동상 수상을 시작으로 이듬해엔 대상을 받는 등 이 행사에서만 여섯 차례 입상했고, 다른 만화공모전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늘 가족을 시상식에 대신 보냈다. 임청산 공주대 만화학부 교수는 “지씨의 카툰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며 “전혀 배우지 못한 사람이 습작만으로 이 정도 경지에 이른 것은 불가사의”라고 말했다.

    지씨가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 수는 셀 수도 없고, 2002년부터 그린 것만 150점.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애니메이션 센터는 지씨가 추석선물용 갈비박스에 보관하던 이 카툰들과 습작노트·스크랩북을 신주단지 모시듯 들고 와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무료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모든 그림의 뒷면에는 생각과 느낌을 적은 지씨의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가령 이빨 빠진 합죽이 상어를 조롱하는 작은 물고기들의 그림 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목이 아프지 않다면 만화를 더 많이 그릴 수 있을까?”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이재범 큐레이터는 “앞면에는 그림, 뒷면에는 작가의 삶이 그대로 묻어난 에세이가 적혀 있는 시화전(詩畵展)”이라며 “액자를 벗기고 그림 뒷면까지 볼 수 있도록 누드전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생애 첫 개인전인데도, 전시장에 가 보지 못하는 작가는 팸플릿에 이런 인사말을 남겼다. “한계선상에서 고민하다 노력한 흔적이라도 보여드리자는 심산으로 하얀 도화지 위를 펜 선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을 보여드리게 되어 보람과 영광을 느낍니다.” (02)3455-8315
    1급 신체장애로 40여년간 집에서 칩거하며 외롭게 작품 세계를 펼쳐온 카툰작가 지현곤씨의 마산 집에서의 작업 모습과 인터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제공= 정지섭 기자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