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칼럼] 이공계 살리기에 언제까지 매달려야 하나

입력 2007.07.13 19:23 | 수정 2007.07.14 01:42

송희영·논설실장
누군가 ‘이공계(理工系)를 살리자’는 구호를 외치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번듯한 공과대학의 수석 입학생이나 수석 졸업생이 의과대학으로 이적(移籍)하면 언론이 “이럴 수가…”라며 크게 보도한다. 미분과 적분 기호조차 모르는 이공계 대학생이 적지 않다는 탄식도 그치지 않는다.

수출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경제개발 과정을 돌이켜 보면 ‘이공계 사랑’은 어느새 한국인의 두뇌 속에 각인된 것이다. 또 앞으로 얼마간은 철강, 조선,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휴대폰에 많은 한국인들이 밥줄을 매달고 있어야 할 처지를 감안하면, 이공계 살리기는 긴박한 국가 과제 중 하나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공계 살리기 구호가 애절하면 애절해질수록 한국 경제가 제조업만으론 안 된다는 공감대도 동시에 넓어지고 있다.

이공계 출신이 취직할 직장이 속속 이 땅을 떠나는 판에 이공계에 지나치게 매달린다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 이공계 대학 교수들, 이공계 출신 경영인들, 그리고 기술계 관료들이 정성 들여 펼쳐온 이공계 살리기 캠페인은 몇 년 안에 쑥스러운 착각이 될 수 있다.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한국 경제가 이공계 산업에만 붙잡혀 있을 만큼 한가하지는 않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 이유는 세계 경제의 통합 과정에서 각 나라의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인들이 중국과 인도에 다녀오면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말한다. 이는 제조업에서는 중국, 인도와 경쟁할 수 없다는 얘기다. 두 나라와 동남아 국가, 브라질이 이제 전 세계에 값싼 소비재를 공급하는 거대한 제조 공장으로 자리잡았다.

한때 일본제가 선진국 소비시장에 공급됐고, 이어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이 비슷한 역할을 맡았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세계 물결로 한국산 소비재가 발 붙일 곳은 없어졌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이공계 출신의 취업률이 급격히 하락한 시기와 중국·인도 경제의 부상(浮上) 시기는 딱 맞아떨어졌다.

구닥다리 경제 전문가들은 ‘그래도 제조업 육성이 일자리 만들기에는 최상책’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작년 한 해 통계만을 보라. 한국을 대표하는 132개 상장 수출 제조업 중 매출 증가와 함께 사원 숫자를 늘린 회사는 STX, 삼성중공업 등 26개 회사에 불과했다. 나머지 8할은 사원 숫자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줄였다는 얘기다.

국내 전자회사들은 지난 5년 동안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현재 한국의 주력 제품인 자동차·반도체·철강·조선·휴대폰을 만드는 회사들도 앞으로 5년 사이 해외에서 이공계 인력을 더 많이 채용할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산업 구조가 뒤바뀌었음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수출 실적이 매년 10% 이상 증가하는데, 왜 대졸 실업자는 줄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더 이상 제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공계 대학 지원을 그만두자거나, 제조업을 포기하고 기술개발에 투자하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금융업이나 경영컨설팅 등에서 수학·물리와 공학 교육을 받은 인재가 더 필요해졌다.

게다가 천재성을 갖춘 소수의 과학자들에게는 좀 더 투자하고, 바이오 분야 같은 새로운 영역을 국책사업으로 지원할 필요성에 많은 사람들이 찬성 투표를 해줄 것이다.

다만 이공계 출신들이 갈 만한 일터가 골 잔치가 끝난 축구장처럼 허전하다면 한국 경제는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영국의 경우 금융·부동산업에서 밥벌이하는 취업자 숫자가 제조업 분야보다 60%가 많다. 미국의 경우 90년대 10년 동안 건강·의료복지 부문, IT 서비스 분야, 재무·회계·정보조사·인재파견 같은 비즈니스 지원 서비스 산업에서 900여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우리도 규제 개혁과 경영 혁신이 이루어지면 유통업이나 음식료업, 레저산업, 의료·복지 같은 내수(內需) 서비스업 분야에서 얼마든지 돈벌이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런데도 이공계 위기론(論)을 앞세워 전국의 이공계 대학이 고만고만한 졸업생을 붕어빵 찍어내듯 쏟아내고, 정부가 대학과 산하 연구소에 연구비를 나눠먹기식으로 살포한다면 한국 경제가 가고 있는 큰 방향과 맞지 않는다. 특히 이공계 살리기가 무슨 숭고한 애국운동이자 선진국으로 가는 경제 살리기 전략인 것처럼 몰고 가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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