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테헤란로 30년

조선일보
  • 이준 논설위원
    입력 2007.07.10 22:51 | 수정 2007.07.10 23:00

    1977년 6월 이란 수도 테헤란의 고람레자 닉페이 시장이 서울시와의 자매결연을 위해 한국에 왔다. 닉페이 시장은 결연 식장에서 “우의를 다지는 뜻에서 서울시에 ‘테헤란로’를, 테헤란시엔 ‘서울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구자춘 시장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서 서울 강남역 네거리부터 삼성역 인근 삼성교까지 강남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4㎞ 구간 도로에 ‘테헤란로’란 이름이 붙여졌다. 테헤란 시 메라트 공원 인근 길은 ‘서울로’로 불리게 됐다.

    ▶테헤란로엔 강남 개발과 함께 1980년대 후반부터 금융기관 본·지점들이 밀집, 금융타운을 만들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정부는 고려·동서증권 퇴출을 신호탄으로 대대적인 금융권 구조조정에 나섰다. 투신·증권·종금사 등 33개 부실 금융기관 영업정지, 동화·동남·대동·경기·충청은행 5개 은행 퇴출, 국제생명 등 4개 생명보험사 퇴출 명령이 2~3일이 멀다 하고 쏟아졌다.

    ▶‘테헤란로의 대학살’로 금융인들이 떠나간 뒤 이곳에 새로 둥지를 튼 건 벤처·IT인들이었다. 2000년 ‘벤처의 봄’ 때 줄잡아 1500개 벤처·IT기업들이 테헤란로 양쪽에 진을 쳤다. 초고속 광통신 같은 첨단 IT 인프라와 협업·제휴가 용이한 사업환경이 그들을 불러모으는데 한몫을 했다. 그 뒤를 좇아 관련 협회와 기관이 들어오고 창업투자회사·캐피털회사도 속속 모여들었다.

    ▶테헤란로는 수많은 스타 벤처기업을 키워냈다. ‘리니지’로 유명한 국내 최대 게임업체 ‘엔씨소프트’, ‘카트라이더’로 PC 방 게임업계를 석권한 ‘넥슨’은 90년대 중반 테헤란로 사무실 한 칸을 겨우 빌려 사업을 시작했던 회사다. 검색포털 업계의 강자 ‘네이버’와 ‘다음커뮤니케이션’, 보안소프트웨어업체 ‘안철수연구소’, ‘한글과 컴퓨터’ 같은 기업들은 테헤란로에서 힘을 키워 이사 갔다.

    ▶테헤란로는 벤처 거품이 꺼진 2003년 이후 성형외과와 탈모·비만 클리닉들이 늘어나 한때 ‘뷰티 밸리’라고 불렸다. 요 몇 년 새는 국내외 유명 대기업이 모여들면서 ‘브랜드 밸리’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한다. 애플, 퀄컴 등 세계적 IT기업과 현대모비스, GS그룹, 동부제강 등이 본사를 이곳으로 옮겼다. 삼성그룹도 올해와 내년 초까지 강남역 삼성타운으로 입주한다. 테헤란로는 30년 역사 속에 금융타운·벤처의 요람·유명대기업의 거리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테헤란로의 내일 모습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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