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시(戰時)납북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조선일보
  • 이미일·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 이사장
    입력 2007.06.22 22:12

    정부, 1953년 이후 납북자만 챙겨·전쟁중 끌려간 민간인은 어쩌나

    ▲이미일·6.25 전쟁납북인사가족협 이사장
    최근 정부 산하기관인 통일연구원이 발간하는 북한인권백서는 6·25전쟁 납북억류자의 규모나 실태를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다. 백서가 발간되기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 돼 가지만 처음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늦었지만 반가웠다.

    우리는 학생이었을 때 ‘납북시인’ ‘납북작가’란 말을 많이 들었다. 6·25전쟁 때 미처 대피를 못하고 북한으로 끌려간 분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납북자’란 1953년 휴전 이후의 납북 피해자만을 지칭하게 되었다. 급기야 지난 4월 통과된 ‘전후납북자지원특별법’은 이들 전후 납북자에게만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전후 납북자와 그들의 가족들이나마 오랜 설움을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서 ‘1953년’ 휴전 이후의 납북자에 대해서만 법적 권리를 부여한 것은 위헌적인 일일 뿐 아니라 반역사적이고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1953년이 아닌 1948년에 건국되었다. 그해에 헌법이 제정되고 정부가 수립되었다. 건국 후 불과 2년도 안 돼 전쟁을 겪게 되었지만 전쟁 당시에도 우리 헌법은 국가의 국민 보호의 의무를 적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정부도 의당 그러한 의무를 갖고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민간인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미처 대피 하기도 전에 한강 다리를 끊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적 치하에 노출된 것이 사실이며, 이리하여 납북되어 간 수많은 납북자들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그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협의회가 수집한 각종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철저한 사전준비와 조직적인 노력에 의해 북한으로 피랍되어 간 민간인은 8만명을 넘어선다. 그중에는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애국적인 공무원과 전문인들의 수가 적지 않다. 납북자의 98%가 남자였고, 그중에서 88%가 전쟁 발발 석 달 만에 납북되었으며 약 85%가 16세부터 35세까지의 젊은 남자들이었다.

    국회의원 및 정치인 169명, 법조인 190명, 경찰 1613명, 행정 공무원 2919명, 교수 및 교원 863명, 기술자 2836명, 의료인 582명, 예술가 107명. 우리 정부가 작성한 명부만 분석해 보아도 이렇게 소중한 인적자원이 강제로 피랍되어 갔지만, 이분들은 군인이 아닌 순수한 민간인 피해자였던 까닭에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못 되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민 보호에 실패했던 책임을 방기하고 언제까지 ‘시민’의 개인적 불행에만 탓을 돌리려 하는지 궁금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결코 연약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부강하고 활력 있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역사를 바로 정리하고 세워야 한다는 데 인식을 모으고 있을 뿐 아니라 선진국의 철저한 개인보호정신에 대해서도 공감하며 부러워하고 있는 형편이다.

    조선·반도체·철강·인터넷·도로·항만 어떤 분야에서든 세계 최고 수준의 기간산업을 갖고 있고, 정치적 민주화의 측면에서도 높은 수준의 질적 성장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이 아직도 국민의 목숨에 대해 유치한 수준의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면 우리 스스로 성숙한 국가에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6·25전쟁 납북자를 도외시하고 1953년 이후에 일어난 납북사건에 대해서만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전후납북자지원특별법’은 우리 전시 납북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차별법으로 보인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전쟁 때 강제로 끌려간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 실태를 조사하여 국가 차원의 합법적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적절한 관련 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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